ADVERTISEMENT

[황석영·이문열 시대를 논하다] 3. 북한의 벽을 말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황석영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북한 체제는 두 가지 얼굴로 봐야 합니다. 먼저 감동적인 부분은 전쟁 때 석기시대로 돌아갔다고 할 만큼 철저히 파괴된 상태에서 북의 남녀노소가 복구한 자생적인 생활력입니다. 아무튼 내가 가보았던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자급자족해서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물샐 틈 없는 사회 통제인데 이것은 가위 절망적입니다. 사회 전체가 일종의 농성이 계속되는 통제 체제라고 보면 되겠지요"라고 말을 보탰다. 이문열씨와의 북한 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회:북한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는 남한에서 한때 생사를 가르는 살벌한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두 얼굴…. 감동과 통제 얘기가 쉽게 다가섭니다.

황석영:어린아이까지 나서서 한장 한장 벽돌을 나른 전후 재건 과정은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는 듯합니다. 흔히들 수용소를 말하지만, 북한에는 수용소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요. 도시에 살던 사람을 벽지의 집단농장으로 보내면 고생스러워 몇 년 못 살고 죽겠지요.

이문열:내 선친도 수용소가 아닌 지방 농장으로 보내졌다고 들었어요. 국경 근처의 평농장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아오지 탄광' 광원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황:북한 사회는 한마디로 관절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직맹이나 여맹.사로청 같은 당 외곽이나 말단 마을의 리당 세포까지 중앙당의 완전 통제 아래 있거든요. 결국 말단의 작은 일부터 중간 단위의 제법 큰일까지 위로만 올라갑니다. 과부하가 되니까 사지가 굳어버리고 심장에 이상이 오지요.

사회: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황:이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데요. 밖으로는 서방의 봉쇄와 안으로는 철통 같은 통제가 서로 상승되어 굳어진 체제지요. 지방의 리당이나 협동농장 같은 '관절'에 재량권이 있으면 중간에서 한번씩 걸러주거나 풀어 주는데 그렇지 못해요. 재량이 없으니 항상 '1백% 달성' 따위의 허위 보고가 만연하는 거라.

이:나는 북한에 접근하는 남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한 말씀 드리지요. 동질성 회복을 위한 것이든, 문화 교류를 위한 것이든 남한 사람이 북한에 많이 가고 자주 만나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대부분은 교류나 동질성 회복이 아니라 일종의 단합대회를 하는 것 같습디다. 맨날 가는 사람만 가고, 저들과 따지고 싸울 것이 없는 사람만 가니 친목이나 도모하고 우의나 돈독히 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황:설사 이형이 보는 대로 그것이 사실이라 쳐도,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어요?

이:문제는 그것이 반복적이고, 또 그 때문에 자기검열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갔다온 사람 중에는 이렇게 하면 북한이 나를 안 볼 거다,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다시 나를 안 부를 거다 식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을 더러 보았습니다. 다음 방북자 명단에서 자기를 빼는 것이나 방북을 거부당하는 것을 이상하리만치 걱정하더군요.

사회:방북이 무슨 벼슬하는 것도 아닌데….

이: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문화계 사람이 더 그렇던데요. 내가 아는 어느 작가가 솔직히 고백합디다. 애초에 북한에 갔던 것 자체가 교류라기보다는 차라리 단합대회나 현지 학습이더라고요. 이산가족 상봉 같은 절박한 현안조차 그저 하나의 행사로서 자꾸 주변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황:남북 관계의 특성상 국가가 행사 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북쪽 사람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 곁에 가족끼리 있으면 가만 있다가도, 누가 나타나면 장군님, 장군님 하고 야단이잖아. 대구 유니버시아드 행사 때 김정일 초상화가 비 맞는다고 난리치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의 순화된 감정들을 다 잊어버렸다고 할 만큼. 그런 것을 이해하자 이겁니다. 역으로 거기 감동을 받거나, 그래서 저쪽 체제가 우리보다 낫다고 할 사람은 남한에 하나도 없을 것 아니오?

이:그런 낙관론에 기초한다면 할 말이 없는데, 현실이 그렇게 낙관이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지요.

황:그 뒤에 남측 사람들이 평양 가서 그랬대요. 당신들 초상화 떼어내는 소동 때문에 모처럼의 대회 의미를 다 날려버렸다고. 그랬더니 북측 일꾼이 웃더래. 어린 여학생들이 거기가 평양하고 똑같은 줄 알고 그런 모양이라고.

이:선배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류든, 일체감 조성이든 서로 상이한 문화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만남 아니겠습니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되풀이해 만나봤자 단합대회밖에 안될 겁니다.

황:아니 몇년 전 사회단체들 방북할 때는 자유총연맹이나 상이군경회 등 고루고루 방문한 걸로 아는데. 저쪽은 개인이 자기 생존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이미 아니에요. 유엔에 의하면 지난 십여년간 2백만~3백만명이 서서히 죽어갔다고 해요. 지도원이란 사람이 생필품 부족으로 겨울에 속옷도 못 입어. 전기가 모자라 출퇴근할 때는 아파트 주민이 동시에 모여 하루에 두 번 운행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 10층, 20층까지 온 가족들이 식수를 길어 나른다고 해요.

사회: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을 좀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이:황선배의 대북관은 남한 체제가 우위라는 굉장한 낙관 위에서 시작하는데, 그런 논의에는 왠지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먼저 그런 낙관이 근거있는 것이라면 그것부터 대중에게 믿게 해주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불안해하게 마련입니다. 주머니에 현금 몇 푼 있는 건달이 깡패에게 얻어맞을까 겁나 주머니를 털어주면서 크게 인심쓰는 척하는 꼴은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그 낙관에도 그리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생존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식이 다를 뿐 생존경쟁에서의 우위는 어느 쪽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 한두개만 있어도 남한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될 판인데….

황:핵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하는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요. 미사일이 있잖아. 남한이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위치가 다 나와 있어요. 미사일로 핵 발전소를 때리면 그게 곧 핵 공격이오.

사회:그러니 핵 개발을 놔두자는 말씀은 아니지요?

황:내 얘기가 뭐냐 하면 핵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를 따지기 전에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북이 저렇게 떼를 쓰는 것은 오로지 미국에 관계개선을 해달라는 줄기찬 요구예요. 나는 이번 6자회담의 성사와 진행을 보면서도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평화 체제로 가기 위해 노력하자, 그런 생각이 잘못인가?

이:평화체제 정착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법론이나 그 결과의 유용성을 강조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빠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부적 일치, 남남 갈등의 해소가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밖에 선택이 없으며 또 그것은 틀림없이 이뤄진다는 믿음과 낙관부터 먼저 줘야지요. 소위 좌파든, 친북 인사든 이른바 햇볕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이 그것입니다.

황:나는 친북이냐, 반북이냐 하는 용어도 버리고 싶은데….

이: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나는 친북이란 말 때문에 소송 당했는데 "안티 조선을 먼저 시작한 것이 북한이다"고 한 말이 "안티 조선은 친북이다"로 비화되어 명예훼손을 했다는 것입니다. 소송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씁쓸하더군요. 친북과 반북은 하나의 태도이고, 지금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의식도 크게 변했어요. 친북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명예가 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친북적이라는 말이 더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로 비치기도 하지요.

황: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지고 유연해진 것 아니오?

이:자유로운 사고, 개방적인 사고를 누가 탓합니까. 거기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전과 다른 방법을 도입하려 한다면, 그 방법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먼저 심어줘야 하지요. 내가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우익의 입장은 그렇게 편한 것 같지는 않습디다. 남한이 정말 그렇게 우월하냐? 이 대답에 자신이 없는 거지요.

황:또, 또 자기를 우익이라네. 그런 논리로 내가 이형과 반대로 좌익이 되는 손해를 감수하게 되잖아. 생각 좀 해봐요. 저쪽 후방 철책선을 뜯고 금강산에 들락날락하고, 육로로 1천5백명이 평양 관광하고. 얼마나 달라진 거요?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이자고.

이:그 길이 다 북한의 속도전 루트래요. 하하하.

황: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네. 허허허.

사회:그래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태도가 어째야 합니까?

황:북이 변화하려면 변화할 조건을 줘야 해요. 다른 대안이 없어요. 이런 얘긴 섣불리 하고 싶지 않지만 북한이 개방한다면 해주 공단이든, 압록강 특구든 남한의 경제권에 편입되어 버리는 거요. 외국인 노동자 데려오고, 중국 가고 베트남 나가고 난리인데, 북은 언어도 통하고 노임도 쌉니다.

이:북한이 내국 식민지 꼴이 난다면 저절로 망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일이지요. 멀쩡하게 처음부터 그 조건으로 일하러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차별대우라고 난리치는데.

황:그쪽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책임도 크다고 봐요. 언젠가 미국 기자들한테도 얘기했지만 미국이 관계 개선하고 시간을 좀 주면 우리가 변화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이오.

사회:민족 공조 얘기입니까?

이:지난해부터 이상한 기류가 하나 흐르고 있어요. 사람을 가장 쉽게 동원하고 크게 감동시킬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민족주의인데, 요새 그 민족주의가 너무 값싸게 팔리는 것 같아요. 촛불시위에도 축구 시합에도 그 민족주의가 너무 기승을 부리는 느낌입니다.

황:좀더 멀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애석하고 씁쓸한 얘기지만,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판을 보면서 특검이니 뭐니 하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 생기더라고. 결과적으로 대북송금 특검은 소모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쥐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게 아니었는지.

정리=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