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두용 『피막』|국제 영화상 물꼬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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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두용 감독(48)은 81년 그의 39편째 연출 작품 『피막』(80년)을 들고 베네치아 영화제에 참가한다. 베네치아 영화제는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선 칸 영화제에 조금 뒤지지만 그 역사는 국제 영화제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2년에 시작되었다.
대회장은 베네치아 앞 바다에 있는 리도섬의 파라초 델 치네마(영화 궁전)로 이곳은 영화제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홀이다. 영화제 개최 기간 중에는 정식 참가 작품 외에 근처의 영화관에서 명작들의 회고 상영도 있다.
『피막』에는 우리 한국인들이 봐도 깜짝 깜짝 놀랄만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남자들이 단명해 늙고 젊은 과부들만이 우글거리는 강진사댁 퇴락한 큰 기와집, 장손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드러눕자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무당떼, 옥화(유지인)라는 처녀무당이 굿을 벌이고 있을 때 난데없는 구렁이가 처마 끝에서 뚝 떨어지고 옥화는 그것을 태연히 받아드는 장면, 피막지기 (남궁원)와의 밀통이 발각돼 청상 과부인 며느리 이씨(김윤경)가 가문을 더럽힌 죄로 다짜고짜 머슴들의 방망이에 맞아 죽어 자루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지는 장면, 피막 깊은 지하에 미이라처럼 오랫동안 보존되었던 사체가 거미줄에 덮인 채 나타나는 장면 등‥.
『피막』 상영이 끝나자 약 1천5백명의 비평가·기자들이 열렬한 기립 박수 끝에 두시간에 걸쳐 질문공세가 있었다. 미스터리 수법을 빌린 이색 민속사극에 매혹된 것인데, 한국에서도 이렇게 재미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느냐는 것 같았다.
한 프랑스 평론가는 이 감독을 마구 껴안고 좋아하고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밀라노 총영사 부처와 자녀들이 며칠 왔다가 갔다.
그때 중국 영화도 처음으로 1편 출품되어 그 영사장에 밀물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였는데 끝날 때쯤 되니까 중간에 다 나가 15명쯤만이 남아 있었다. 영사장에서 사람이 다 나가는 것도 하나의 보이지 않는 채점방식인 것 같았다. 얼마 전 칸영화제에 출품했던 어느 한국감독이 자기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떼지어 나가니까 『내 영화를 감상할 자격도 없는 작자들』이라고 화가 나서 소리 지르더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것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여비가 바닥나려고 해서 영화제가 끝나기 전에 미국으로 날았던 이 감독은 거기서『버라이어티』지를 보고 비로소 자기가 그해 출품한 저명한 감독 6명에게 주는 ISDAP상을 받은 것을 알았다. 이렇게하여 유명 국제 영화제의 문은 이 감독의『피막』이 최초로 연다. 그후 『피막』은 세계 30개 도시 크고 작은 국제 영화제에 초대, 시사되고 한국영화계에 이두용 감독이 있다고 존재를 과시한다.
2년 후 그의 『여인 잔혹사-물레야 물레야』(83년)는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영화로 번역되어온 「Un Certain Regard」에 입선된다. 86년에는 뉴델리에서 있었던 제11회 인도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되어 중국의 사진 감독 (부용진), 소련의 오키브 감독 등과 함께 참석했다. 심사위원들은 비서 1명과 승용차 1대씩이 주어지는 대우를 받았다.
이 감독은 『잃어버린 면사포』(70년)로 데뷔한 이래 10년만에 액션 미스터리풍의 민속사극으로 국내외에 그 명성을 확립했는데, 그의 보다 더 뚜렷한 본령은 통쾌 무비한 액션드라마에 있지 않을까. 가령『해결사』(81년) 같은 것은 시정 서민들 속에 살며 약자와 빈자 편에 서서 늘 정의감을 앞세워 자기보다 강한 자들을 가차없이 격파하고 응징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이 이태원 술집 같은데서 덩치가 자기보다 배나 되는 흑인들을 때려 누이는 솜씨는 한국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타이밍과 논리가 정확한 액션들이다. 그것도 손이나 발로 티격태격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부딪치는 듯한 에너지가 분출하는 생동감으로 꽉 차있는 화면들인 것이다.
88올림픽 기록영화에서 이 감독이 맡았던 부문은 일체의 격투기 스포츠였다.
그리고 미국 영화 제작자 피터 스트라우스의 초청을 받아 『침묵의 암살자』 (Silent Assassins 88)라는 액션 영화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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