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외교의 허와 실/문일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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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무총리로서는 6년만에 해외나들이에 나선 강영훈국무총리는 아일랜드ㆍ벨기에ㆍ터키 및 EC본부 공식방문을 마치고 28일 귀국길에 올랐다.
강총리의 이번 유럽방문은 『부담스러울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총리 스스로의 표현대로 가는 곳마다 국가원수에 준한 대접을 받아 50여명의 일행 대부분이 감격스러워 했다.
벨기에는 강총리를 영빈관에 모셨고 대규모의 공항영접행사는 물론,수백명의 경호원을 붙여 물샐틈없는 엄호를 했다. 아일랜드와 터키는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대연회를 베풀었다.
일행중 일부는 몇년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럽방문때 현지언론이나 정계가 보인 「냉랭한」반응을 상기하면서 수년간의 위상변화를 새삼 실감하는 듯 했다.
이번 방문국들이 유럽에서도 비교적 열세국가들이고 또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외형적 대접의 변화는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강총리는 우리정부의 UN가입에 방문국들의 지지를 재삼 확인했고 북방정책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한편 남북한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정부의 노력들을 역설했다.
그러나 강총리의 이번 유럽순방은 외견상의 화려함에도 불구,내용면으로는 지금까지의 「총리외유수준」을 벗어나지 못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중심제에서의 총리외교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총리가 별 현안이 없는 국가를 방문해 실무적으로 작업이 끝난 협정에 서명이나 하는 역할은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상대국은 대단한 대접을 하는데도 불구,아일랜드에서처럼 우리공관의 미숙으로 급조한 통역이 의사소통에 실수를 저질러 바꾸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젠 총리도 상응한 임무와 권한을 갖고 내실있는 외교활동을 벌일 때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이스탄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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