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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엔 회원국 의무" 한국 "해상 국지전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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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외무장관 회담의 핵심 쟁점은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한.미는 PSI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본격 참여'를 주장하는 미국에 맞서 한국은 '참여 확대 유보'를 강조했다. 한.미 관계에 격랑이 예상되는 이유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유엔 회원국의 의무'를 내세우며 강경한 어조로 본격적 참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반기문 장관은 "현재처럼 옵서버(참관자)로 참가할 것"이라며 "정치권의 논란 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전면 참여가 어려우며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한국은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역내.외 훈련에 참관단을 파견'하는 PSI 참관국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PSI에 정식으로 참여해 북한 선박을 검색할 경우 남북 간에 해상 국지전이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라이스 장관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은연중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해상 검색과 관련해 국제법과 국내법이 적용된다. (한국에) 남북해운 합의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라이스 장관이 거론한 남북해운합의는 사실상 PSI를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남북해운합의서의 부속합의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8월 발효된 이 합의서에는 '우리 측 해역을 항해하는 북한 선박이 무기 또는 무기 부품을 수송할 경우 선박을 정지시켜 승선.검색해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라이스 장관은 PSI에 대한 국내 일각의 반발을 의식한 듯 회견 말미에 "대한민국에 온 것이 무엇을 요구하러 온 것은 아니다"고 했다. "라이스 장관은 PSI 문제가 2008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반미 감정의 기폭제가 될까 우려하는 것 같았다"고 회담 배석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PSI 참여 문제가 향후 한.미 갈등의 주원인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한국이 PSI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없었고, 해상 검문으로 인한 충돌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PSI 참여를 역설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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