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없다” 판단 내부투쟁 전환/방송 제작복귀 모색 속사정(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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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로통해 「주장」홍보키로/“재야단체와 정치투쟁 병행”/노조내 의견 갈려 진통 예상
방송관계법의 국회기습통과에 항의,14일 연대제작거부에 들어간 방송사노조가 곧바로 제작복귀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대정부 투쟁에 대한 백기」라기보다 「좀더 명분있고 효율적인 내부투쟁」으로의 전환으로 풀이된다.
즉 정상적으로 제작ㆍ방송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관계법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홍보,「비민주적 법안」이라는 여론을 환기시켜 해결책을 구하려는 장기투쟁전략의 일환이라는 뜻이다.
이와함께 방송사노조는 국민연합ㆍ전교조 등 재야세력과 연계,노정권퇴진운동 등 정치투쟁도 병행할 방침이어서 이번사태는 대내외투쟁이라는 양면성을 갖게될 조짐이다.
방송4사 노조대표로 구성된 「방송법개악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14일 제작거부에 돌입하면서 『국회문공위를 통과한 방송관계법의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해 송출부문노조원들의 제작거부 참여도 고려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16일로 예정됐던 국회본회의 통과가 14일 기습적으로 이뤄지자 공대위는 향후 투쟁의 구체적 방법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쟁목표를 상실,무의미해진 제작거부투쟁을 언제 어떤 명분으로 그만두어야 하는가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와중에 각사 노조 일부에서는 제작거부투쟁이 더이상 명분과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따라서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제작에 복귀,프로그램을 통한 「내용투쟁」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상황론」이 노조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던것.
방송관계법의 본회의 통과직후 MBC노조가 실시한 노조원 분임토의 결과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무제한 소모전격인 제작거부보다 현업에 복귀,이번 법안의 비민주성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제작ㆍ방송하자는 의견에 동조했다.
또 MBC노조가 제작거부를 선도하면서 개정방송법중 가장 독소조항으로 꼽았던 「민방허용」문제가 노조원사이에서도 「방송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상업방송으로 전락,저질ㆍ퇴폐프로가 판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도 이번 제작거부에 대한 노조원의 응집력을 약화시켰던 원인으로 분석된다.
KBS노조 역시 노조원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제작거부 돌입과 동시에 노조가 소집한 사원총회에 불과 1백여명만이 참석,총회가 무산돼 제작거부에 대한 저조한 참여도를 보여줬다.
이에대해 찬반투표때의 74%라는 높은 제작거부 찬성률은 4월의 KBS사태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으로 인한 반감때문이었지 이번 투쟁과 직접 연결된 지지열기는 아니라는 분석이 자체적을 나왔다.
KBS사태 당시 사원총회에는 평균 2천여명이상이 참가,열기를 보였으나 공권력투입으로 투쟁목표가 무산된 것을 경험한 KBS노조로서는 첫 집회의 참여열기가 너무 낮아 더이상 제작거부라는 강경일변도로만 몰고갈 힘을 낼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제작거부 이틀동안 노조원의 상당수는 제작에 참여,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정상방송되는 「제작거부속의 정상방송」이라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더구나 3개월째 사내에 투입되어 있는 경찰이 사실상 불법인 제작거부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할 경우 노조원만 손해를 본다는 분위기가 팽배,노조집행부로서는 현업복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대위는 제작 복귀로 투쟁방향을 급선회했지만 앞으로 각 방송사의 내부투쟁과정에도 많은 문제가 따를 것이 틀림없다.
표면상 아무것도 얻지못하고 「무조건 항복」식의 제작복귀에 대한 일부 노조원들의 불만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비록 각사 노조가 방송 관계법의 국회본회의 통과저지를 위한 전면제작거부임을 명백히 했지만 방송사상 초유의 엄청난 연대제작거부를 강행하고도 아무것도 얻지못한데서 오는 노조원들의 패배감과 허탈감은 향후투쟁의 성패를 가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프로그램 투재에대한 회사측 대응여하도 앞으로 노조분규의 불씨로 남을수 있다.
이에대해 공대위는 정당한 프로그램 제작ㆍ방송을 회사가 막지 못하도록 하는 「방송강령」 등 제도적 장치를 노사합의하에 마련토록 예정이나 회사측에선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이밖에 관계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새로운 방송관계법개정안을 마련,국민서명을 받아 「국민청원」형식으로 법개정을 건의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어 이번 사태는 학계와 사회저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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