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시인 고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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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삭아져 내리는 구름의 뒤에
이따금씩 맨살의 어깨가 드러난다
미답이다 미답이다
이 골짜기의 돌이란 돌마다 물이란 물이 죄다 와서
생채기를 내고 가더니
저 고운이 비워둔 자리
새겨둘 대구가 아직은 없음이다.
2
더는 올라갈 수가 없다
신을 벗었어도 발은 천근이다
세상의 누더기 옷을 입고
산을 오른 어리석음이다
흔하다 여겼던 물소리 바람소리
듣는 법을 몰랐음이다
무쇠라 믿고 있었던
내 한 자루의 끝
귀머거리 가야에 와서
비로소 삭정이임을 알겠구나
더는 올라갈 수가 없다
맑은 이끼만 더럽힐 뿐
해인의 그림자 하나
내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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