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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8」통해 동구권 수교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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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 스포츠의 요람 대한 체육회가 13일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했다.
1920년 7월13일 조선 체육회(초대 회장 장두현·동양물산 사주)의 이름으로 닻을 올린 체육회는 70성상의 연륜을 쌓아 올리는 동안 민족사의 영욕과 함께 호흡하며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거들어 왔다.
초창기 일제하의 시련과 고난의 역사를 극복하고 해방 후 어두운 암흑기를 지나 80년대 들어 국운 상승의 기류 속에 아시안게임·올림픽을 차례로 유치,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등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 온 것.
특히 아시안게임 2위, 서울 올림픽 4위의 쾌거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고희를 맞은 대한 체육회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보면-.
설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가맹 경기 단체는 44개 (준 가맹 6개 포함)로 늘었으며 산하 15개 시·도 지부에 10개 해외 지부를 둔 방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또 초기엔 2개뿐이던 전국 규모 대회(축구·야구)가 올해는 무려 3백94개로 늘어났다.
88년 이후엔 해외 원정 경기나 외국팀 초청 경기도 부쩍 늘어 한국 스포츠의 현 위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 동안 거쳐간 체육회 총 수만도 29명. 89년 첫 경선으로 취임한 김종렬 회장이 30대째다.
1920년 치려진 조선 체육회 주관 제1회 전 조선야구 대회가 전국 체전의 효시가 됐고 25년에는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이 건설 돼 체육 발전의 급신장을 가져왔다.
38년 일제의 강압으로 해산되는 비운을 맞았으나 45년 해방과 더불어 대한 체육회(48개명)가 발족, 47년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가입하고 48년 런던 올림픽에 태극마크 아래 첫 출전함으로써 국제 무대로 발돋움하게 됐다.
53년 사단법인으로 정관을 고쳐 순수 민간 단체의 성격을 명확히 했고 민관식 회장 시절인 66년 태릉선수촌을 준공, 엘리트 스포츠의 총 본산으로 자리를 굳혔다.
70년 제6회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다 반납하는 시행 착오도 있었으나 86, 88 양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냄으로써 한국 스포츠는 새롭게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동구권과의 국교 수교가 올림픽 이후 줄을 이었으며 소련·중국과도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이 가시화 되고 있음은 특기 할 만하다.
그러나 올림픽 후의 대한 체육회는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야 할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체육부와의 관계 설정, 재정 자립을 위한 수익 사업 전개, 사회 체육 진흥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
70주년을 맞은 대한 체육회는 시대적 요청에 발맞춰 마땅히 방향 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게 체육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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