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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극약처방 일파만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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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량유급」사태 후유증/취업에 차질 입영 불가피/주동학생 검거ㆍ재단비리 전면 수사할듯/재정 타격… 학교 존립 위기
세종대가 국내 대학사상 초유의 사실상 전원유급사태를 맞게 됨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전 사회가 심각한 후유증과 파장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학생들이다.
이들은 한참 공부하고 의욕적으로 활동할 시기에 뜻하지 않은 공백기를 갖게 됨으로써 시간적ㆍ경제적 손실과 함께 회복할 수 없는 심리적 충격과 좌절감을 겪게 됐다.
20세 이상의 남학생들은 당장 입영연기혜택이 취소됨에 따라 대량 군입대가 불가피하게 됐다.
ROTC교육 이수자들은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자동적으로 임관이 불가능한 사태를 맞고 있다.
다만 87년까지 실시됐던 교련과목 이수자들은 유급사태와 관계없이 해당학점에 따라 군복무 단축혜택을 받게 된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의 경우 1년간 취업기회를 잃게 돼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며 재수ㆍ삼수 등으로 입학해 연령이 높은 학생들 상당수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됐다.
학교와 재단측이 보게 될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교부의 재단개편방침에 따라 관선이사 파견등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며 91학년도 신입생 모집이 대량 감축됨에 따라 등록금ㆍ입학금 수입에 차질이 생겨 심각한 재정압박을 겪게 될 것이다.
이에따라 관계자들은 교직원들에 대한 상여금은 물론 임금ㆍ시설관리비 지급마저 어렵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내년 1학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등록금 재납부에 반발할 경우 재단의 재정상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돼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존립위기마저 우려된다는 것이 학교관계자의 분석이다.
세계 대학사상 세종대사태의 유일한 전례는 69년 동경대생 전원유급사태.
동경대는 이해 입시를 중지,이 학교를 지망하는 1만여명의 졸업생들을 재수생으로 만들었다.
또한 학내분규로 6백31명의 학생이 체포돼 이 가운데 6백10명이 재판에 회부됐으며 1백12명에게 최고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학교당국은 이를 계기로 학생ㆍ교수ㆍ직원들로 대학개혁위원회를 구성,권위주의 청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동의대와 서울교대가 수업일수 부족으로 전원유급 위기를 맞았으나 극적으로 고비를 넘겼다.
동의대는 당시 재학생 7천5백56명 가운데 93.4%인 7천2백47명이 공부하겠다는 청원을 해 유급사태를 막았다.
서울교대도 주동학생들이 학우들을 유급시킬 수 없다며 등록금 동결등의 주장을 철회하고 휴교령 해제를 요구해 극적으로 정상화됐다.
그러나 이번 세종대사태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재단ㆍ학교와 학생측이 서로의 입장을 견지한 채 팽팽히 맞서 최악의 결말을 맞고 말았다.
이와관련해 적극적인 중재 또는 재단비리조사 노력등을 기울이지 않은 채 끝내 극약처방을 내리고 만 문교부의 납즉하기 어려운 태도도 계속 비판의 도마위에 오를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궁극적 원인이 재단비리인 만큼 이를 계기로 세종대재단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배중인 총학생회 간부와 수업거부 주동학생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ㆍ형사처벌 선풍이 일 것으로 보고 이 과정에서 사태가 한층 악화일로를 걷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징병연기 혜택 취소에 따른 대량 군입대문제등이 국방부ㆍ병무청 등 관계기관과의 협조로 원만히 해결되고 선의의 피해자들에 대한 등록금 재납부 면제등의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성과 양식의 보루인 대학이 자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외부의 충격에 의해 권위와 명예를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는 점에서 세종대사태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손실과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이하경기자>
◎충격속의 대학 운동권/전대협 전략부재 악수 거듭/예상외로 피해 커지자 당황/학생들 불신 증폭 우려 대책 마련 부심
세종대가 총장선출문제등을 둘러싼 학생과 재단측의 계속된,분규끝에 결국 법정 최소수업일수 14주를 채우지 못하고 4천여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의 사실상 전원유급이라는 국내 대학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은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내부에서도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운동권학생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기 때문에 정부는 결코 무더기 또는 전원유급을 시킬 수 없다』고 일반학생들에게 강조해왔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주동급학생 10여명이 구속당하는 「순교」를 함으로써 실리는 못얻더라도 대의명분은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었으나 피해학생들의 범위가 상상 외로 커질 것으로 보이자 이에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세종대사태가 끝내 재단과 학생측의 자폭으로 가게 된 것은 지도부학생들이 이번 분규를 단순히 한 대학의 총장선출문제등이 아니라 전체대학을 대표한 학생과 재단갈등의 대리전으로 파악한 데도 원인이 있다.
분규가 계속되는 동안 세종대에는 『우리는 사학비리를 상징하는 재단과 전체 1백만 학도를 대표해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심심찮게 나붙었었다.
학생과 재단이 서로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은 얻고 양보할 만큼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명분만을 앞세우게 됨에 따라 협상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 학생들이 계속 강경입장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올 1학기 서울시내 대부분의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과 총장선출 등 학내문제를 둘러싼 분규가 학생들의 완패로 끝났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전대협측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전대협은 5월19일 광주에서 전국 각대학 학원자주화추진위원장들이 모여 세종대에 대한 지원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하는 등 세종대사태를 금년 학원자주화투쟁의 마지막 고리로 삼으려 했었다.
전대협은 세종대사태가 결국 대량유급으로 치달은 이상 휴교령과 주동학생들에 대한 일체검거는 물론 학생운동 전체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뒤따를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문교부장관이 탄 차를 학생들이 가로막은 채 때려부수고 선 정상화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멱살을 잡는등 분규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보여준 과격행동은 시민들의 비난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정부가 이같은 점을 이용,학생운동 자체의 도덕성에 대해 문제삼고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부산 동의대사태와 동양공전 설인종군 폭행치사사건에 이어 이번 세종대사태는 전대협이 거듭된 악수로 학생들에 대한 지도력과 국민들의 지지를 상실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대량유급사태 책임은 방관자세로 일관한 문교부와 비리의 온상인 현 재단이 함께 져야 하겠지만 전략부재의 투쟁일변도로 밀고 나간 세종대와 전대협 지도부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전대협의 가장 큰 고민은 학생들로 받게 될 불신이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유급됐을 때 피해 학부모나 학생들 중 대부분은 일차적인 책임을 문교부나 재단보다는 「유급사태는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투쟁을 이끈 운동지도부에 돌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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