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처음엔 동해로 알았던 과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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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실험 파동은 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의 핵 안보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핵실험 여부를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인 핵심 방사능 물질의 탐지 기술도, 장비 개발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 개발에 착수하는 등 핵 위협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그동안 뭘 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미국 관계 당국이 방사능 물질을 잡았다고 발표하지 않았다면 '가짜 핵실험' 논란이 더욱 기승을 부릴지도 모를 판이었다. 심지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과기부에 처음 보고한 핵 실험 위치가 '동해바다'였다는 것도 16일 과기부 국감에서 밝혀졌다.

핵실험을 판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물증이 필요하다. 인공 폭발에 따른 지진파 포착, 방사능 물질 검출, 인공 위성 사진이나 각종 첩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중 핵실험 때 나오는 방사능 물질의 탐지와 분석은 북한처럼 폐쇄적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확인하는 중대 열쇠다. 이를 탐지.분석하는 기술은 원자력 발전소 주변이나 서울 지역에 방사능 수치가 어느 정도 오르내렸는지 확인하는 과기부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환경 방사능 측정망'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 한국 기술의 정밀도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내놓는 탐지 기술 정밀도의 100분의 1~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과기부는 환경방사능 측정망에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물질이 잡히지 않는다는 보도자료를 여러 차례 내놓았다. 가령 '핵실험에서 주로 나타나는 방사성 핵종(지르코늄-95, 루테늄-103, 세슘-137, 세륨-141)은 검출되지 않았음'이라는 식이다. 이를 본 국민 대다수는 마치 우리나라 측정망으로 이번 핵실험 때 나온 핵 물질을 포착할 수 있는데 측정 결과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핵 전문가들은 북 핵실험 때 공기 중에 나온 방사능 물질을 1g 이하로 추정한다(KAIST 장순흥 부총장). 드넓은 하늘로 퍼진다면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극소량이다. 과기부는 이런 '진실'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환경방사능 측정망으로는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 물질을 포착할 수 없고, 고도의 군사기술에 속하는 분석기술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방사능 물질이 잡히지 않았다'는 발표를 거듭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밖에 볼 수 없다. 과기부는 '우리나라의 기술과 장비로는 핵실험 방사능을 잡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어야 옳았다.

CTBTO가 핵실험 판별 때 꼭 탐지해야 하는 방사능 물질로 꼽는 것이 환경방사능 측정망 감시 방사능 물질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다. 네 종류의 제논과 바륨이 그것으로 우리 측정망으로는 잡을 수 없다. 과기부는 핵실험이 발표된 뒤 며칠이 지나 제논 측정장비를 스웨덴에서 긴급 공수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 공기를 채집하는 장비로 밝혀졌다. 그 공기를 스웨덴으로 보내 분석해야 그런 방사능 물질을 함유했는지 여부, 또 함유돼 있다면 핵실험으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신원기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16일 "아직 핵실험 핵종 채집과 분석 기술.장비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한 일은 없지만 2년 정도 투자하면 관련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북 핵실험을 계기로 연구개발 과제로 삼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서너 번 핵실험 위치를 수정한 지질자원연구원이 핵실험 당일인 9일 과기부에 처음 보고한 위치는 '동해상'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자동적으로 신속한 통보를 하도록 돼 있는 시스템 때문이었고 전문가가 깊이 분석해 내놓은 결과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진앙 분석 소프트웨어의 수준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김희정 의원(한나라당)은 "지질연구원의 장비 수준과 과학자의실력을 살피지 않고 상황 발생 30분 안에 보고하라는 청와대.국가정보원 등의 무리한 요구가 잘못을 불렀다"고 말했다. 미국은 핵실험 후 3시간 뒤에, 일본은 5~6시간 뒤에 진앙을 처음 발표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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