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둑을 이기려면 프로 입단 문호 넓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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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프로 입단 제도'가 바둑계의 긴급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바둑사이트의 바둑팬이나 논객들은 물론 프로기사들도 이 문제로 격론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입단 문턱의 지나친 병목현상에 따른 입단연령의 상승 추세에 우려의 목소리가 집중되고 있다. 통계적으로 세계를 지배해온 천재들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대개 11세 전후에 입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엔 13세 입단도 아주 희귀한 케이스가 됐다. 너무 힘든 입단 경쟁에 지쳐 유망주들이 바둑을 떠나거나 천재들의 재능이 사장된 결과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2003년 이후 4년간의 평균 입단연령은 17세로 높아졌다.

춘란배 세계대회에서 이창호-이세돌 쌍두마차가 중국에 패배한 사건이 물밑에서만 논의되던 프로입단 제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도화선이 됐다. 한국이 세계대회에서 25회 연속 우승을 거두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2006년 들어 세계 바둑은 빠른 속도로 중국의 독무대로 뒤바뀌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일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아니다'로 모아진다. 앞으로는 더욱 어둡다는 의견이 이어진다. 그 핵심에 입단제도가 있다. 천재들을 제대로 키워내려면 입단 문호를 넓혀 입단 연령부터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입단 연령을 15세로 제한하는 강력 조치를 취했다).

◆ 높아지는 입단 연령=입단 연령이 낮을수록 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통계가 증명한다. 조훈현은 9세, 이창호는 11세, 이세돌-최철한은 12세에 입문했다. 한국기원은 '연구생'이란 엘리트 양성 시스템을 통해 천재들을 조기에 발굴했고 이들은 불세출의 고수로 자라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바둑기사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실력도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입문을 향한 연구생들의 경쟁은 그야말로 지옥도가 됐다. 실력은 이미 프로 9단과 맞먹는 정도인데 문은 바늘구멍이다 보니 입단 연령은 점차 높아졌다. 최근 활약이 뛰어난 10대 유망주들의 경우 강동윤이 13세, 이영구-홍성지-윤준상-김지석이 14세에 입단대회를 통과했다. 입단 연령이 낮은 기사가 성적이 좋은 것은 여전하지만 그들 에이스 급의 입단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해 13세에 입단대회를 통과한 박정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바둑과 입단 연령의 함수관계를 말해준다.

◆ 중국 기사의 입단 연령= 창하오(常昊)가 10세, 랭킹1위 구리(古力)와 3위 쿵제가 12세, 2위 셰허(謝赫)와 4위 후야오위(胡耀宇)가 11세. 이창호-이세돌-최철한의 입단 연령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예들로 내려오면 차이가 벌어진다. 중국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천야오예(陳耀燁)와 저우루이양(周睿羊), 구링이(古靈益)는 모두 11세에 프로로 입문했다. 한국 최고의 신예들보다 2,3세 낮은 것이다. 또 한국에선 강동윤-김지석이 89년생으로 유망주 중에선 가장 어린 편인데 중국의 저우루이양은 91년 생인데 벌써 국내랭킹 10위다. 신예들의 입단 연령은 물론 평균 나이도 중국이 더 어려 잠재력 면에서 한국이 밀리는 양상이다.

◆ 입단대회는 지옥문=한국의 한해 입단 티오는 남자 7명(여자는 별도 2명). 이중 서울의 한국기원 연구생 중에서 6명을 뽑고 지방 연구생 중에서 1명을 뽑는다. 서울엔 120명의 연구생이 있는데 이 중 20~30명 정도는 당장 프로가 돼도 상위권에 들 수 있을 정도여서 이들이 겨루는 입단대회는 그야말로 죽음의 관문이 아닐 수 없다. 갓 입단한 초단들이 세계대회에서 유명 9단들을 제치고 본선에 오르는 것도 이런 연유다. 이창호 9단은 지금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일 중 하나로 입단 당시의 기쁨을 꼽는다. 전자랜드배 우승자 김성룡 9단은 "다시 입단하라면 확률은 반반"이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농담이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의 지방 연구생들에겐 매년 단 한 장의 티오가 주어진다. 바둑팬들과 바둑도장을 운영하는 프로기사들을 중심으로 입단 문호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체 프로기사들의 동의가 필요한 실정이어서 실현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입단 '18세가 정년'
"이 나이 넘기면 프로로 대성 못해"
서봉수·유창혁은 예외적으로 두각

18세를 넘기면 프로가 돼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바둑계의 오랜 통설이다. 한국기원 연구생은 그래서 18세까지 입단에 성공하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 최근엔 너무 가혹하다 하여 1년 연장을 해주고 있지만 아무튼 18세는 프로 입문의 데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데드라인을 넘긴 연구생 출신들이 아마바둑계를 휩쓰는 것도 근래의 새 풍속도다.

그러나 서봉수 9단과 유창혁 9단은 만18세에 프로가 됐으나 대성했다. 한.중.일을 통틀어 이런 케이스는 이 둘뿐이니까 이들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서 9단이 입단대회에 나가던 시절만 해도 입단 경쟁은 덜 치열했다. 자연 입단 초년생들의 실력은 선배 프로들에게 한참 밀렸다. 서봉수 역시 프로세계에 들어온 뒤 처음엔 뭇매를 맞았으나 빠르게 성장하더니 불과 2년 만에 타이틀을 따냈다. 유창혁 9단은 초등학교 시절 이미 아마 강자였고 재능도 인정받고 있었으나 개인 사정이 겹치며 프로 입문까지 오래 걸렸다. 세계아마대회에서 준우승한 공로로 입단대회 예선을 면제받는 혜택 끝에 간신히(?) 입문에 성공했다.

연구생 제도는 1980년대에 생겨났고 이창호 9단이 1986년 연구생 1호 입단을 기록했다. 박영훈 9단은 연구생으로 있다가 스스로 떠난 케이스. 그는 답답한(?) 연구생을 떠나 아마대회를 전전하며 실전을 만끽했고 그 바람에 14세 때에야 입단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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