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이문열 이 시대를 논하다] 1.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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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의 황석영, 보수 진영의 이문열-. 우리 시대 최고의 논객인 소설가 황석영(60)씨와 이문열(55)씨가 만났다. 갈기갈기 찢어진 이 시대를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손해 보더라도 나서겠다"고 작정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얼핏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두 사람의 얘기는 일정 지점에서 수렴되는 듯했다. 우리 사회 통합의 실마리가 황석영-이문열 두 논객의 대담에서부터 풀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화록을 5회로 나눠 싣는다. 진행은 본사 정운영 논설위원이 맡았다. [편집자]

사회:소개가 필요 없는 두 분에게 '아주 특별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모두(冒頭) 발언을 하시지요.

황석영:이문열 형은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동료 작가예요. 나이 차는 5년이 나지만 이 시대에 저런 작가가 없으면 서운하다 싶을 작가입니다. 때때로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갈등이 없어요. 이형이 유교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나이가 위인 사람에게 깍듯해요. 나는 그런 점에서는 무심한 편이거든.

이문열:황선배는 단순한 문단 선배가 아니라 내가 문학적으로 많은 지도와 도움을 받은 선배입니다. 깍듯하지 않을 수 없죠. 다른 데서도 얘기했지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거리가 있다면, 거기는 내가 선택한 것도 있고 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떠밀려가서 그렇게 된 것도 있습니다.

황:그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꼭 6.25 때 길바닥에서 잃어버린 동생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문단에서 기회주의자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이형은 소신 있는 사람이에요. 이제 진영이고 뭐고를 앞세워 논쟁하지 말고, 되도록 같은 쪽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화합할지 그런 걸 고민해야 돼요.

이:황선배를 처음 뵌 게 1981년 대구에서 고은 선생 하고 함께였는데, 그 자리에 몇 안 되는 내 편 중의 하나였어요. 내가 보수 반동이라고 의심받고 있을 때라 분위기가 나한테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황선배하고 김지하 선배 두 분이 이런 사람 말도 들어야 한다고 주위를 설득하더라고요.

황:자꾸 우리를 대치점에 갈라놓으려고들 하는데 우리는 새로 화해할 게 없어. 허허허.

이:우리가 언제나 일치한 것은 아니지만, 분열에도 분열의 방식이 있는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방식은 아주 불쾌하고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사회:근자에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든 송두율 교수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황:송두율이 분단의 희생자라고 변명했더니 양쪽에서 난리가 났어요. 한쪽에서는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대들고, 한쪽에서는 왜 그를 전향시키려고 하느냐고 아우성이야. 송두율 문제는 우리 사회가 성숙했으면서도 자기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봐요.

이:그 양반의 저서 하나 읽은 것이 없어서 송교수 사건에 긴 얘기는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더 모호하게 되는 거라.

황:내게는 남북이 활용한 거 같애. 송두율 사건은 공안 당국으로서는 성공한 작품이야. 저쪽도 더 보호하고 이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황선생님도 93년에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텐데요.

이:황선배가 국내에 들어오기 한달반 전 우리가 뉴욕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안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곧 들어왔잖아요. 그때 신변 안전에 어떤 언질을 받았어요, 아니면 벌받는다는 각오로 들어온 거예요?

황:두 가지 다예요. 그때 이미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알았어요. 나한테 도와달라고 정부 쪽에서 사람을 보내기도 했고.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면 한 2년 살고 나올 줄 알았지요. 주범인 문익환 목사가 3년반을 살았으니 나는 그것보다 적게 살겠지 하고 들어왔지.

이:황선배가 빨리 들어온 이유가 송교수가 들어온 이유를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혹시 잘못된 정보를 받고 들어온 것은 아닐까요?

황: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모대학에 자리가 났다는데 거기서 말년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 사람 정말 가난하게 살았어.

이:그래서 돌아오려고 했더라도 들어와서 오락가락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에요?

황:너무하기보다는 잘못이 크지. 공항에서 털고 들어왔어야지. 며칠 전 독일에서 통일 운동하던 간호사들이 들어왔는데 하는 얘기가 어처구니없다는 거야. 그럴 거면 떠나면서 밝혔어야지 그러더라고.

이: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지만 갈수록 오리무중이라는 느낌이에요. 화해라는 말도 좋지만 잘잘못이 먼저 가려져야지요.

황:국정원과 검찰이 불구속 상태에서 출퇴근 형태로 수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의 국적이 외국이기도 하지만 참 많이 달라졌어요.

사회:노동당 입당 같은 일을 당시는 몰랐더라도 오늘 돌이켜볼 때 무슨 낌새 같은 것이 없었습니까?

황:없어요. 범민련 하고 남북이 공개적으로 3자 회담을 하는데 한번도 얼굴을 비친 적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만나 술은 먹지 외로우니까. 이형하고 나하고 뉴욕에서 술 마시듯이. 공개적인 행사라든가 선언문 같은 데 한번도 사인한 적이 없어요.

사회:이렇게 밝혀지니 혹시 섭섭하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황:어처구니가 없는 거야. 91년인가 내가 북에 갔을 때 송두율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이지만 이 사람이 그럴 위인이 못돼. 저렇게 헤매는 것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해서 그래. 독일 국적 포기한 뒤 영구 귀국 선언하고 전향해, 그렇지 않으면 지식인으로서 못 살아난다면서 정수일 선생 예를 들었어요. 그 분은 자신의 학문을 지키기 위해 다 던져버렸다고 그랬지요. 이번 기회에 국가보안법을 과거와 같이 그대로 온존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때가 됐다고 봅니다.

이:그런 결단의 시기를 놓치는 것 같아요.

사회:송두율 사건의 설득력 있는 해결 방향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처음에 나는 아주 불쾌했습니다. KBS 같은 데서 너무 띄웠어요.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것도 그래요. 그런 식이면 히틀러는 왜 용서 못하고 유신 체재는 왜 못합니까? 간첩 혐의로 체포하겠다는데도 들어와서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것도 큰일입니다. 진상은 거의 드러난 것 같고. 자꾸 더 큰 반성문만 요구할 게 아니라, 그 진상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결정할 때가 된 듯합니다.

황:공소 보류 정도로 살려야지. 검찰 태도는 너무 짓밟는 것 같애. 탈당 성명 하면서 이미 저쪽하고 끊어진 것 아니에요. 그랬으면 여기서도 그 정도로 끝내고, 필요한 사람이니까 데리고 사는 게 좋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함께 살자는 데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달리 송두율씨에게만 가혹할 까닭은 없지요. 만경대 정신으로 통일하자던 사람도 버젓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사회: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할도 있고 변하지 않는 역할도 있을 텐데, 이 시대의 지식인은 특별히 어떠해야 합니까?

황:지식인으로서 작가는 사람의 삶과 관계가 있으니까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종교인이나 언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사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폐지해야 한다, 전쟁은? 반대해야 한다. 이런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편이 아니라 힘없고 말 못하는 편에 서야 합니다.

이:보수와 진보의 구별만큼이나 지식인이라는 개념도 없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옛날처럼 지식이 소수에게만 독점되지 않고 고급 교육이 일반화되어서 독자 중에 유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식인이란 말보다는 사회의 여론 형성에 기여를 하거나 영향력 가진 사람들 정도가 더 정확할 텐데.

황:한때 이형보고도 문화 권력이니 뭐니 했는데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이:지식인의 기능이란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책무로서 균형 감각 같은 것이지요.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를 편들어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키는 역할과, 사회 전체의 안위와 복리를 증진시키고 그런 체제와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역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편든다면, 그것은 균형 유지와 사회 방어라는 전제 아래 편들기가 이뤄져야 합니다.

황:이제 우리 누구를 편들지 맙시다. 문학으로써 글쓰는 것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영향을 주도록 하고, 그때그때 일어나는 작은 갈등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요.

이:시의(時宜)성 이슈에 자꾸 간섭하다가는 작가가 상할 가능성이 크고, 또 이념 대립으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학생 시절에는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믿게 됩니다.

황:나는 요새 와서 굉장히 자유스러워졌어요.

이:자유로워지는 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갈수록 묶이는 곳이 늘어나는군요.
사회=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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