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핵실험 미국 책임론' 무책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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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여권이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고, 안보 위기를 해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10여 년간에 걸친 북핵 사태에서 합의를 깬 쪽은 북한이었다. 1991년 한국과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으나, 뒤에서는 핵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94년 북.미 합의 이후에도 핵 개발을 해 왔다고 2002년 북한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남쪽에 잠수함.잠수정을 침투시켜 경수로 지원사업이 지체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책임론자들은 이런 측면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대북 강경책만 구사해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중.일과 함께 북한이 핵 포기만 하면 체제 보장은 물론 엄청난 규모의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무시하고 핵 보유라는 일념하에 '핵실험'이라는 금지선을 넘었다. 이것이 북핵 사태의 본질이라는 점도 이들은 외면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핵심 배경은 미국의 금융 제재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금융 제재라는 강경책을 철회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가라도 이를 용인할 수 없다. 만약 북한이 한국 화폐를 위조.유포했다면 우리라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국제범죄를 저지른 측엔 아무런 질책 없이, 자국의 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미국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다면 과연 온당한 주장일까.

유엔을 비롯한 미.일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곧 시작된다. 이런 판에 미국 책임론만 거론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공조하려는 국가'라는 낙인과 함께 고립될 것이 자명하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취약해진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겠는가. 햇볕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직 대통령과 집권층이 안보 불안을 부채질하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니 정말 우려된다. 당장 중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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