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비밀보호 입법시급/「경신실업」산업스파이사건 계기 필요론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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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수행위로만 처벌 가능/“개발된 신기술은 보호해야 마땅”
애써 개발한 기술이나 정보가 도용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산업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최동식판사는 26일 직장을 옮기면서 자신이 전에 몸담고 있던 회사가 새로 개발한 장비의 사진을 찍어간 인조피혁제조기술자 이동철씨(33)에게 1심 공판에서 주거침입죄를 적용,징역 1년을 선고했다.
주거침입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것은 전례가 드문 일로 최판사는 이에 대해 『원회사측에 눈에 보이는 피해는 없다고 하더라도 힘들여 개발한 장비의 사진이 유출됨으로써 막대한 시장피해를 본것이 인정돼 유죄판결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피의자 이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이 직장(작업반장)으로 근무하던 경기도 파주의 인조피혁제조업체 경신실업에서 동종업체인 성창화성의 과장으로 승진,자리를 옮기면서 경신실업이 3년동안 1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피혁제조장비의 사진을 찍고 기계전문제조업자에게 이 장비를 보여주는등 정보유출혐의로 피해업체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으며 성창화성은 올해초부터 경신실업과 유사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었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또 26일 부동산투기꾼으로부터 돈을 받고 도로개발계획도면을 빼내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로부차장 강영규씨(52)를 배임수재혐의로 구속했다.
강씨는 지난 2월 국토개발연구원으로부터 용역받은 충북 수안보 인터체인지 조성계획 검토도면을 투기꾼에게 3백만원을 받고 건네주는등 다섯차례에 걸쳐 1천2백만원을 받고 도면을 빼돌린 혐의다.
국내에서 이같은 산업스파이 문제는 지난 78년부터 간혹 있었으나 87년에는 제약회사임원이 동종업체로 옮기며 약품제조 지시서를 함께 빼내가다 적발되는등 비슷한 사건의 발생빈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건이 표면화된 경우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물증이 없거나 피해업체가 스스로 포기해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으며 장비ㆍ도면등외의 노하우ㆍ정보까지 포함하면 비밀도용 또는 유출로 인한 피해사례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산업이 구조 조정을 겪으면서 기술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적지않은 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도용돼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리는 것은 기업의 기술투자 의욕을 위축해 결과적으로는 경제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선진각국에서는 기업비밀ㆍ기술에 대한 보호를 적극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이미 영업비밀보호법을 제정해 놓은 상태며 서독ㆍ스위스 등 유럽국가도 『무형의 회사비밀도 재산가치로 본다』는 법정신하에 각종 규제책을 마련,시행중이다. 일본도 지난 87년 형법안에 첨단기술ㆍ소프트웨어관련 보호조항을 신설한데 이어 부당경쟁방지법속에 기업비밀보장 조항을 삽입한 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법규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산업스파이 행위로 적발이 된다 해도 절도ㆍ주거침입ㆍ뇌물수수 등 부수적인 행위를 걸어 처벌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번 인조피혁회사사건의 경우도 『피의자가 불법목적으로 기계보관장소에 들어갔다』는 「주거침입죄」가 처벌근거가 됐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부존자원 부족등으로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지난 81년 9천5백만달러에 그쳤던 기술관련 무역수지적자가 지난해에는 9억1천9백만달러로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올들어서도 1ㆍ4분기에만 9억달러의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하는등 기술자립이 더욱 시급해졌다.
업계와 법조계는 이에 따라 『개발된 기술은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ㆍ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순협변호사는 『기술개발의욕을 높이고 개발기술에 대한 보장을 위해서는 별도의 법규를 만들거나 관련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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