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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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25전쟁은 바로 반공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49년 처남·매부간의 사상적 대립을 그린 한형모감독의 『성벽을 뚫고』가 나오면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반공영화는 6·25를 계기로 보다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간다.
60년대 이후 80년대초까지는 국가정책에 의한 반공영화가 6·25 소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만희감독의 『돌아오지않는 해병』(63년), 신상옥감독의 『빨간 마후라』(64년), 김기덕감독의 『남과 북』(65년)등 대중성이 강한 10여편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보상(외화수입쿼타 및 대종상상금)을 노린 목적극이었다.
특히 70년대에 만든 『증언』(임권택감독·73년 ), 『들국화는 피었는데』(이만희감독·73년), 『태백산맥』(권영순감독·74년), 『낙동강은 흐르는가』(임권택감독·76년)등 이른바 관제 반공영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남북을 선악이분법의 틀에 맞춤으로써 문화적 향기를 잃었다.
그러나 이같은 관제반공영화외에 6·25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 영화들이 줄곧 만들어졌다.
첫째는 통일을 지향하는 화해의 의미를 갖는 경우다. 이만희감독의 『7인의 여포로』(65년)를 비롯해 유현목감독의 『장마』(79년), 임권택감독의 『짝코』(80년), 정지영감독의 『남부군』(90년)등이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북한을 대립관계가 아니라 극복돼야할 동반관계로 인식한 민족동질성 회복의 시각이다.
둘째는 동족상잔의 현실을 인간성 상실의 위기로 귀착시킨 『피아골』(이강천감독·55년), 『산불』(김수용감독·67년)등과 같은 작품세계다.
셋째는 이산의 고통을 통해 6·25가 남긴 상처를 부각하고자 한 일련의 노력들이다.
배창호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84년), 임권택감독의 『길소뜸』(85년), 이두용감독의 『최후의 증인』(80년)등이 이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뜻하는 역사성보다 그 상황이 낳은 기구한 삶에 초점을 맞춘 『처와 애인 』(김성민감독·57년),『남과 북』(김기덕감독·65년)등 주로 관객을 의식한 멜러드라마의 경향이다.
6·25를 다룬 영화가운데서도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북한군의 포로가 된 한국여군이 중공군에게 유린당하려는 찰라 북한군에 의해 구원을 받는 이만희감독의 『7인의 여포로』였다. 김종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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