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신대륙이 '발견'됐다고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신간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은 세계사의 본질을 묻는 책이다. 저자 이성형(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라틴아메리카 정치학) 박사는 유럽 중심으로 쓰여진 세계사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면서 50개의 사례를 통해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백인.남성 중심으로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에다 제3세계.유색인.여성.원주민의 관점을 대입시킴으로써 역사의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학계의 큰 흐름인 탈근대.탈식민적 역사 읽기의 하나이기도 하다.

책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이 미몽임을 지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발견'이라는 주장은 결국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을 '은닉'하고 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 당시만 해도 서유럽은 아시아나 이슬람권에 비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허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로마 시대부터 난징조약(1842년)에 이르기까지 서구는 인도와 중국에 팔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술과 상품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보다 80년 전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일곱번이나 원정을 떠났던 중국 명나라 영락제 때의 환관 정화(鄭和)의 경우가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콜럼버스의 네차례 원정에서 범선이 가장 많은 경우가 17척이었고, 인원은 1백명에서 1천2백명 규모였다. 반면 정화의 원정에는 41~3백17척의 함선이 동원되었고, 인원도 매번 3만명이나 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쪽 무역로를 택한 것은 동쪽으로 가기엔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에게 지불해야 할 통행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유럽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화에 성공하며 세계 무대에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문제는 강자에 의해 역사가 재단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모든 문명.기술.부(富)가 서구에서 비서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유럽 중심주의적 서술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르네상스 이래 역사가.지도 제작자.언어학자.철학자.문인 등이 만들어낸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만 해도 서유럽의 독창품이 아니다. 저자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가 작품 '신곡'에서 아랍의 향기를 맡고, 서정시인 보카치오의 음유시에서는 프로방스의 냄새를 맡는다. 결국 역사와 문화는 지역간에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상호 변용하는 과정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은(銀).설탕.커피.옥수수.감자의 무역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세계사는 인간과 상품이 세계화되는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비서구 지역이 결코 유럽 중심의 세계체제에 수동적으로 '편입'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