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해(환경오염 위험수위: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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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차 한대가 유해가스 연 1톤 내뿜는다/전국서 나오는 폐유 연 70만드럼/대부분 하수구에 버려 하천 오염
『네발달린 철제공룡.』
『유독가스를 내뿜고 굉음을 지르며 정기적으로 기름 「똥」을 배설하는 괴물.』
환경문제 운동가들이 표현하는 자동차의 모습이다.
매연과 유독가스를 코앞에서 뿜어내 도시민의 첫번째 「체감공해」를 만들어 내고 일정거리를 뛰고난 뒤 갈아야 하는 엔진오일등 이른바 폐윤활유는 하천으로 유입,우리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있다.
수없이 많은 문명의 이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자동차는 이제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각종 공해의 주범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3월말 현재 전국의 차량대수는 2백82만9천9백대. 인구 14명당 한대꼴로 늘어난 자동차는 「교통사고」라는 고전적이고 물리적인 위험의 대상만이 아니라 인체의 치명적인 공해물질을 토해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동차에 의한 대기오염 문제만큼이나 최근들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자동차 폐유 오염이다.
일정거리를 주행하고난 뒤 바꾸어주는 엔진오일ㆍ기어오일등 각종 폐윤활유의 상당량이 하천등으로 흘러들어 식수원과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20만드럼만 수거
윤활유 공업협회에 따르면 연간 자동차 폐유발생량은 14만여t. 2백ℓ짜리 드럼 70만개 분량이다.
연간 신유판매량 23만2천t중 소모된 뒤 수거되는 분량을 60%로 보고 잡은 수치다.
그러나 자동차폐유를 수거해서 재생하거나 소각 처리하는 양은 고작 연간 20만드럼.
결국 50만 드럼의 각종 자동차 폐유가 하천이나 야산등지에 마구 버려지고 있다. 말이 50만드럼이지 엄청난 양임에 분명하다.
자동차폐유는 유성향상제ㆍ내마모성첨가제등 각종 독성첨가제가 들어있어 공장연료로 태우면 납ㆍ망간등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 매연이 발생하고 하천에 유입되면 독성첨가제등이 정수처리가 안돼 수도물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폐유재생업자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거를 꺼리고 있어 추정량보다 휠씬 많은 양의 폐유가 하천등지에 버려지고 있다.
당국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폐유처리업소는 전국 35개소이지만 대부분 산업폐유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곳이고 자동차폐유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곳은 경기도에 한군데 밖에 없다.
그러나 작년 7월 자동차오일의 원료가 되는 기유수입이 자유화 되면서 가격이 내리는 바람에 재생업자로서는 비용마저도 건지기 힘든 입장이 됐다.
때문에 전국 7만∼8만여개로 추산되는 자동차정비업소ㆍ세차장배터리점ㆍ카인테리어상 등은 폐유처리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드럼당 1만∼2만원을 받고 폐유를 팔았지만 지금은 한드럼에 1만원을 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차량정비업소 주인의 푸념이다.
그러다보니 당국의 검사를 피할 수 있는 수준만 신고하고 나머지는 무허가폐유처리업자들에게 주거나 하수구에 버리는 일이 예사로 벌어진다.
특히 영세배터리점은 단속의 손길이 덜 미치는 것을 틈타 상당량을 하수구에 버리고 있다.
서울의 한 무허가폐유처리업자는 『정비업소에서 수거해 간 폐유를 경인지역 중소공장ㆍ목욕탕등에 연료용으로 드럼당 1만∼2만원을 받고 판다』고 말했다.
○지방이 더 심각
그러나 그것마저 최근들어 연료용 기름값의 인하로 수요가 줄었고 지난 2월 무허가폐기물 처리업자와 이들로부터 폐유를 사들인 공장업주등이 무더기로 적발되자 아예 무허가업자들마저 영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결국 차량정비업자의 처지에서 보면 하수구등에 적당히 유기하는 방도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일부 세차장에서 엔진오일등을 바꿀때 종전에 받지않던 폐유처리비 1천∼2천원을 슬며시 얹어 받기도 한다.
수거업자가 가뭄에 콩나듯 거의 없는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는 서울의 경우보다 심각하다.
일부 지방에서는 윤활유를 교환한 운전자에게 폐유를 돌려주기도 한다. 폐유를 받아간 운전자가 어떻게 그것을 처리할 것인가는 보지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동차폐유로 인한 오염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당국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는게 폐유로 인한 오염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주무부서인 환경처나 서울시등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직까지 폐윤활유 관리기준도 마련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의 폭증으로 차량정비업소나 부품판매상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거의 예외없이 모두가 엔진오일을 교환해주고 있음에도 실태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다.
전국의 차량정비 관련업소가 정확히 몇개인지조차 아는 정부부처가 없다.
○관리기준도 없어
더군다나 폐윤활유에 대한 정확한 통계마저 갖고 있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속도 느슨하다는 게 공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해전문가들은 『당국도 폐윤활유의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단속의 손길을 늦추고 있어 폐유로 인한 오염이 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부부처끼리도 손발이 안맞아 차량정비업소나 폐윤활유 수거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이 각 시ㆍ도에 있어 공해물질 발생단계 이전에 환경처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환경처측의 변명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차량정비 업주들은 『체계적인 폐윤활유 관리를 위해서는 윤활유를 만든 정유회사에서 윤활유의 제조뿐 아니라 처리까지도 책임지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활유공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폐윤활유의 처리를 민간에 맡길 경우 엄격한 관리도 어려울 뿐더러 폐윤활유로 인한 공해문제는 여전히 남게된다』며 『정부가 폐윤활유 처리시설을 갖추고 국가차원에서 폐윤활유 처리및 재활용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처 통계에 따르면 전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86년 28.5%에서 87년 33.2%,88년 34.5%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88년 자동차가 토해낸 배기가스량은 1백55만4천1백36t으로 차량 1대가 연간 1t가까운 오염물질을 뿜어낸 셈이다.
오염물질별로는 호흡기질환을 일으키고 산성비와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이 80만8천여t으로 전체 대기오염 질소산화물의 82.6%를 차지했다.
질소산화물은 인체의 눈과 목등 점막을 자극하며 특히 혈액중의 헤모글로빈과 결합,산소결핍증이나 신경기능의 감퇴를 일으키고 호흡곤란ㆍ폐부종을 유발시키는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단속도 눈가림식
또 발암물질을 품고 있는 탄화수소는 자동차가 뿜어대는 양이 전체의 58.8%인 11만2천t을 기록했으며 일산화탄소 45만5천여t(29.7%),아황산가스 14만5천여t(10.2%),먼지 3만2천여t(8.4%) 등으로 집계됐다.
탄화수소는 눈이나 피부를 심하게 자극하고 일산화탄소는 산소결핍증세를 가져와 두통ㆍ구토등을 일으키며 심한 경우 뇌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또 아황산가스는 기관지염ㆍ천식 등을 일으키고 악성폐기종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몇해전부터 무연휘발유를 쓰는 저공해 자동차의 보급으로 일부 오염물질의 증가세는 조금 누그러 들었지만 버스ㆍ화물차등 이른바 경유자동차에 의한 매연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매연은 각종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악취와 검댕,시야방해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경유자동차는 전체 자동차중 43%를 차지,미국의 3%,일본의 12%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실정이다.
당국의 매연단속이 있지만 장비와 인원의 부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체차량의 90%정도인 2백50만여대가 전혀 매연단속을 받지않고 있고 그 가운데 25만여대가 기준치를 웃도는 매연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종로의 한 거리청소원은 『한시간만 청소를 해도 눈이 따끔거리고 목이 아파온다』며 얼마전부터 기관지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서울 영등포의 한 노점상도 『하루종일 장사를 하면서 이래저래 말을 하다보면 집에 가서 밤새도록 기침을 한다』고 말했다.
공해전문가들은 『미국ㆍ일본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메탄올등 청정연료를 쓰는 저공해 자동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 손댈 엄두도 내지않고 있다』며 『자동차 제조 관련업자나 정부 모두가 장기적 안목에서 저공해 자동차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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