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앞에 사복있었다/이상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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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말단 공무원의 국토개발계획관련서류 유출사건은 국회의원ㆍ차관급이상 고위공직자 30여명의 또다른 부동산 상습투기 관련설과 함께 사회를 다시한번 놀라게 하며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한다.
이들 사건 모두는 바로 「부동산 투기꾼­바람 뒤에는 반드시 정부고위 공직자등 관련업무 공무원들이 개입돼 있다」던 항간의 소문 또는 막연한 추측을 실제로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리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주요정책입안담당 공무원들이 사전정보를 친ㆍ인척이나 투기꾼들에게 흘려 부동산투기로 거액의 불로소득을 챙기게 한다는 정보는 있지만 꼬리를 잡기 힘들어 현실적으로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한 검찰관계자의 실토처럼 그만큼 구조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범죄」가 적발되지 않은 채 사정정국의 서릿발속에 꼬리를 감추고 쾌재를 부르고 있는 공무원이 얼마나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정부의 주요국토개발계획은 1∼2명의 공무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몇개 부처,수십명의 공무원이 참여하는 탓에 보안유지가 힘든 것도 사실일테지만 그동안 분당 신도시 개발을 비롯,수많은 주요정책이 공식발표도 되기전에 투기꾼이나 증권시장으로 먼저 흘러들어간 것은 「생선가게를 지켜온 이들 고양이」 때문이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또 김선목씨 사건에서 지방행정을 총괄하며 업무특성상 가장 체계적인 중앙행정부처럼 인식되어온 내무부가 무려 1년3개월동안 31건의 주요국토개발계획 기밀을 투기꾼들에게 팔아먹은 김씨의 범행을 몰랐던 허술한 자체감시기능에도 문제는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 될지도 모르지만 돈 몇푼 먹은 공무원이나 잡아넣고 공직자 골프장 출입금지ㆍ휴일비상근무 등 전시효과를 노린 사정이 아닌 공직자들이 진정한 공복의식ㆍ사명의식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 공직풍토쇄신책을 찾아야만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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