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문화 올림픽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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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인 인도관에서 현대 인도문학 관련서적을 살펴보고 있는 관람객들.[프랑크푸르트 로이터=연합뉴스]

◆ 거친 디지털 폭풍 헤치고 인도가 떠오른다

113국 7272업체 참여 … 역대 최대 규모
주빈국 인도, 40여 작가 - 2000여 출판물 전시
세계 거대 출판사 전자출판 판권 거래 활기

세계 최대 도서시장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관람객들이 한 독일 출판사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프랑크푸르트 로이터=연합뉴스]

'떠오르는 나라 인도, 거센 디지털화 물결'

지구촌 문화올림픽으로 불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새겨진 올해의 특징이다. 8일 막을 내린 제 58회 도서전엔 113개국에서 7272개 업체가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신간서적 11만2000종을 포함해 총 38만2000종의 서적과 디지털 출판물이 13개 전시홀(총 면적 약 5만2000 평)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방문객 수는 다소 줄어 지난해(28만여 명) 수준에 못 미쳤다.

전시장 안팎에는 예년보다 디지털화의 바람이 거셌다. 도서전 조직위원회는 올해 처음으로 전시회 진행상황을 첨단 중계방식인 포드캐스트로 인터넷에 올렸다. 10명의 요원이 도서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한 시청각 자료를 인터넷에서 오디오나 비디오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4번 전시홀 2층 전체를 디지털 시장으로 꾸몄다. 슈프링거. 볼털스클루버사를 비롯한 대형 출판사들의 전자출판 판권과 콘텐트 거래가 활기를 띠었다. 전자출판의 미래를 보여주는 '북, 비트 & 바이트' 행사장은 도서전의 디지털화 추세를 인상깊게 보여줬다.

지난해 주빈국인 한국은 제 6 전시홀에 한국관(110평 규모)을 차리고 국내 45개 출판사가 낸 1300종의 도서를 선보였다. 그러나 지난해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었다. 규모도 크게 줄어든 데다 전시된 책 대다수가 아동용이나 실용도서를 중심으로 한 위탁전시물이었다. 반면 중국, 일본, 대만 등 이웃나라들은 지난해에 비해 국가관 전시면적을 더욱 넓히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대조를 이뤘다.

◆ 주빈국 인도=인도는 198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주빈국으로 초청받았다. 주빈국관은 '오늘날의 인도'를 주제로 삼았다. 입구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24개 공용어, 120개의 방언이 사용되는 인도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자가 디자인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5000년 전 고대인도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으로 꼽히는 브라미 문자가 새겨진 아쇼카 돌기둥이 인기를 끌었다. 그 옆으로 2000여 종의 출판물이 전시됐다. 전시관벽에는 40여 명의 작가사진이 짤막한 소개와 함께 내걸렸다. 독일 인젤 출판사의 한스 요아힘 짐 박사는 "서방세계에 잘 알려진 비크람 제트 등 역량있는 중견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귀뜸했다.

주빈국관은 화려한 인도의상을 걸친 안내요원을 제외하면 비교적 수수했다. 지난해 한국이 '책과 모바일의 만남'을 소재로 '유비쿼터스 북' 등 첨단 정보기술을 총동원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같은 건물 포럼장 입구에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도의 영화산업 '볼리우드(인도 봄베이와 미국 할리우드의 합성어)'를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 시연회가 열렸다. 박람회장(메세) 중앙에 자리잡은 아고라 광장에서는 인도의 요가, 요리,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었다. 내년도 주빈관에는 스페인의 카탈루니아 지방이 소개될 예정이다.

◆ 화제를 뿌린 작가들=6일 오후 3시 제4 전시홀 입구가 붐비기 시작했다. TV 카메라맨과 취재진의 발길이 분주했다. 순식간에 주간 신문 디 차이트 의 부스 앞은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졌다. 곧이어 낮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였다. 그는 최근 발표한 '양파껍집을 벗길 때'란 자서전에서 나치 친위대(SS) 근무사실을 60여년 만에 털어놔 논란을 빚었다. 그라스는 이날 차이트지의 디 로렌초 편집장과의 대담에서도 튀는 발언으로 화제를 뿌렸다. 그는 독일 최고의 일간지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FAZ)를 성토했다. 자서전 내용을 미리 소개하면서 자신의 친위대 복무사실을 선정적으로 다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FAZ는 황색지인 빌트 차이퉁과 같은 보도방식을 택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사퇴한 인도작가 샤시 타로도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현직 유엔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장편소설을 포함한 8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특이한 경력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타로에 관한 4쪽의 특집기사에서 "사무총장 선거에 실패하면 노벨상 문학상 수상을 노릴 정도로 만능 재능꾼"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프랑크푸르트=유권하 특파원

◆ 독일 출판계 큰손 주어캄프사 운젤트 사주

"책만 낸다고 한국문학 알려지지 않아
작가 간 대화 등 문화 알릴 기획 필요"

5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리터라투어 하우스(문학의 집)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주어캄프 출판사 울라 베르케비치 운젤트 사주와(55.사진)을 만났다. 그는 독일 출판계를 움직이는 여장부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울리히 벡, 페터 한트케 등 내로라 하는 학자와 작가를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에게서 올해 도서전의 흐름 등을 물었다.

-한국문학과 작가를 세계문단에 보다 잘 알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무작정 책을 낸다고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유럽에 한국문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한국과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들 간의 대화를 정례화하면 어떨까 싶다. 뿐만 아니라 종교인과 자연과학자들까지 포함하는 대토론을 개최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어캄프가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겠다."

-요즘 책방에 가보면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 처럼 오락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잘 팔려나간다. 그래서 순수 문학과 학술서적의 출판이 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주어캄프는 이런 추세를 맞아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작품성 높은 순수문학과 고품질 인문과학 서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의 편집방침이다. 창사 이래 56년간 지켜온 정신이다."

-올해 도서전의 흐름은.

"새로운 진지함이다. 읽기 쉬운 책보다는 삶을 관조하는 밀도 깊은 작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독일 출판상을 받은 여류작가 카타리나 하커의 장편소설 '하베니흐체'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상사 모든 것을 알면서 단 하나 자기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이다. 예컨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인도가 올래의 주빈국이다. 주목할 만한 인도 작가를 든다면.

"올해는 많은 역량있는 인도 작가들이 소개됐다. 그런데 특히 알타프 타이레왈라가 돋보인다. 올해 29살인 이 청년 작가는 '어떤 신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내놨다. 그는 대도시 뭄바이(봄베이)의 삶과 사회의 변화상을 강렬한 인상과 재기넘치는 필체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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