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에 앞서 차분히 생각하자/한소 정상회담 다음의 과제(사설)

한소 정상회담을 우리 외교의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할 때 이 전기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는 문제가 당장의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첫째 우리가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되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비록 괄목할만한 북방외교의 성과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성과를 구체적 결실로 연결시키기까지는 수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만남의 과정에서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갖가지 가능성중에서 무엇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도움이 되고,또 실익면에서 무엇이 실현성이 있으며 무엇이 허망한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냉철한 계산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외교란 일방의 희망사항만으로 결실을 도모할 수 없는 것임을 어느 때보다 신중히 저울질해야 할 때다.
이런 관점에서 먼저 생각해야 될 점은 한소 정상회담이 주변에 줄 충격의 강도다. 특히 북한의 경우 이번 회담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거꾸로 한국이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가정해보면 그 충격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따라서 북한이 느낄 고립감,패배감,소련에 대한 배신감이 북한당국자를 나쁜 방향으로 자극할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획기적 조치를 취하는 일이 시급하다. 노대통령이 이미 암시했듯이 한국은 북한도 대미ㆍ대일관계에 있어서 진전이 있도록 가시적 노력을 해줘야 한다. 동시에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북의 최근 제의를 검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이번의 충격으로 북한과 중국이 더욱 가까워져 한국의 북방정책에 대해 수구적 연대를 강화할 가능성이다. 그와 같은 결과는 대소관계에서 얻을 평화공존의 분위기를 북한과 중국쪽의 한랭기류로 상쇄당할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전방위외교는 싫든 좋든간에 어느 일방의 성과가 타방에 손실로 받아들여져서는 총체적 목표가 훼손되게 되어있다. 이 점을 외교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도 차분히 계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소관계의 당장의 과제는 역시 경제교류에서 찾아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미개지인 소련 진출에 대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식의 저돌성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경제ㆍ기술협력 추진을 위해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두 나라 경제의 접합을 원만하게 해줄 수 있는 제도정비의 문제이고,다른 하나는 오랜 체제상의 차이에서 길러진 경제원리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의 장벽을 극복하는 일이다.
제도정비의 문제는 소련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를 하고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할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의 체결은 물론이고 루블화의 태환성보장,상품대금이나 투자원리금 송환에 불편이 없는 은행제도의 확립을 소련측이 갖추어 나가는 일이다.
이같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없이는 아무리 우리가 소련에 진출하고 싶어도 거기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며 지금 추진되고 있는 교역이나 투자진출도 바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소련경협의 승패를 가름할 열쇠를 쥐고 있는 문제는 시장기능이나 경제원리에 익숙지 못한 소련사회에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소 경협은 이같은 모든 어려움을 전제로 한발짝씩 앞으로 나가는 신중함이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