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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회담에도 중국 애써 태연/중국지식인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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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눈치 보느라 관계개선 겉으론 자제/현 지도체제 바뀌어야만 수교문제 논의
한소정상회담은 북한에는 물론 중국에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이는 중국의 대한관계 촉진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한 북경의 지도급 지식인 J씨가 5일 주장했다. 이 중국지식인 J씨는 중국의 대한입장은 소련과 다르며 이는 북한이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정치체제상 중국과 북한은 현재 대외관계에서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은 소련과 달리 대한국수교조치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J씨가 중앙일보에 보내온 한소정상회담에 관한 중국측 시각에 관한 특별기고문 전문이다. 중국의 특수한 상황때문에 J씨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익명으로 기고했다.<편집자주>
한국과 중국관계에서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은 일반 중국인들이 한중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정부는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중국인,특히 경제ㆍ무역관계자들은 한국과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희망하면서 북한의 존재를 의식하지도,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차원이 되면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앞서 북한이나 소련등과의 관계를 우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중국 자체가 지닌 양면성은 중국과 한국과의 사이에,한 예로서 무역사무소를 설치하는 단계에서 조차 지지부진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실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한국관계에 앞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중관계에서 한소정상회담의 개최가 던지는 충격은 한중관계의 촉진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선 예상할 수 있다.
중국도 그 내년에서는 소련 한국과의 동구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과의 교류와 관계수립이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것이다.
그러나 관계개선의 범위와 속도 등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한관계정상화 유형은 ▲헝가리등 동구국가들처럼 바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 ▲소련처럼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이를 토대로 국교관계로 진행하는 것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중국이 민간 교역과 정부관계를 분리한 상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등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일관된 관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지리적ㆍ역사적 배경에서 그 특수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지리적으로 소련ㆍ동구국가들은 한국을 인정하더라도 북한의 반발을 비롯,자국에 되돌아오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
그러나 중국은 이와 달리 북한과 「순망치한」의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 이외의 주변국가에 대해서도 안정된 관계유지를 추구해왔다.
특히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과 서로 지도층을 교류하면서 큰 변화나 문제가 있을때마다 서로 협의하고 서로 양해를 구해왔다.
그러나 같은 북한의 우호국인 소련은 이와는 다른 입장이다. 소련의 관행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소련과 한국이 급속한 관계개선을 추구할 것임을 예상해왔으며 이번 정상회담을 민감한 문제로 인식할망정 충격적인 사태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소련은 대북한 지원에서 철저하게 경제적 보상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소련과 북한은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나 중국은 알려진 그대로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인명과 물자를 희생하고서도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혈맹우의」를 강조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현실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중국은 원칙쪽을 선택했으며 이같은 「동양적 사고방식」은 소련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이 대북한관계에서 각각 다른 배경을 지닌다고해도 한소관계의 급격한 진전은 북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때 한소정상회담에 이은 관계정상화의 진전은 소련이 사회주의적 연대를 저버리고 북한과의 관계를 팔아넘기는 배신행위로 간주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한소관계의 급진전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정경분리기조를 지속해 경제적ㆍ실무적 사안에 대처하는 한편 정치적 관계 설정만은 계속 유보해 나가려 할 것이다.
한소정상회담이후 외부정세의 변화는 한반도 정세 및 남북한대화진전에 큰 자극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중국은 대북관계 기조는 바꾸지 않는 한편 한국과의 관계증진을 도모하는 양면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장쩌민(강택민)총서기는 이달초 한소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북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중국과 북한은 이미 북한이 한중무역관계를 용인하는 대신 중국은 한국과 국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다는데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이는 시각을 바꾸면 중국 자체가 외부정세의 변화에 적응하는 탄력성을 상실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의 현지도체제가 국제정세의 변화에 유연성을 보이기 어려운 이상으로 중국도 현지도체제 아래서는 어떤 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공통적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정세변화는 한소관계의 진전에서보다 중국과 북한의 체제 및 현지도층의 변화여부에 의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2차대전이후 국제정세의 변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지금과 같은 한중관계가 그리 오래까지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중 정부관계를 촉진하는 새로운 정책수립에 의해 한소관계의 발전에 대응하는 변화도 예상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책방향은 전반적으로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이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기까지 최소한 8차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구성되는 1992년까지는 일단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미묘하고도 중요한 사항에 대해 중국은 항상 즉각 보도나 논평을 하지 않아왔다.
한소정상회담의 경우 일단 중국정부의 입장이 정리되면 정부의 선전ㆍ선동수단인 신화사를 통해 모든 매체에 동시에 똑같은 내용으로 전달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회담내용에 따라 문제가 있는 부분이나 북한의 저항이 전달되면 보도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현체제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단계에서 한소관계개선에 따른 한반도정세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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