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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가난해졌지만 섹시하다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경제적 어려움 속에도 독일인 생활양식 대변하는 대도시 기능은 다해

스프리 강변의 폐허가 된 중심가. 곧 무너질 듯한 집에 무단거주자들이 가득하다. 그 맞은편의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문 뒤에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베를린의 새 클럽 쿠빅이 있다. 오로지 공업용 컨테이너만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컨테이너에서는 반투명한 녹색 불빛이 뿜어져 나온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면 착각이 아니다.

독특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덕택에 디제이 보비 프뢸리히의 부드러운 포스트-테크노 비트에 맞춰 고동친다. 가끔 달콤한 대마 향이 퍼지는 가운데 20대 무리들이 새벽까지 파티를 한다.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곧 그 컨테이너 박스들이 철거되고 쿠빅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쿠빅은 기발하고 독창적이며 터무니없이 싸다. 입장료는 1유로에 불과하며 맥주는 2유로다. 쿠빅은 새로운 베를린의 완벽한 상징이다. 통일 후 나돌았던 베를린에 관한 온갖 추측을 기억하는가. 베를린이 떠오르는 독일의 신수도로서 냉전의 삭막한 전초기지에서 또 다른 동질적인 번영의 대도시로 탈바꿈하리라는 추측 말이다. 이제 실없는 소리가 됐다. 통일 후의 열기가 시들해졌다. 그리고 베를린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에 아주 만족한다.

베를린은 다시 한번 만인이 인정하는 독일의 생활양식 수도이자 최악의 경제 후진도시가 됐다. 혼잡한 카페, 번창하는 화랑, 곳곳에 깔린 클럽만 보면 베를린의 실업률이 20%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1인당 소득은 독일 주요 도시 중 가장 낮다.

경제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10% 줄었다. 그리고 약 800억 유로에 달하는 베를린의 공공부채는 페루, 에콰도르, 과테말라의 빚을 합친 액수보다 많다. 쿠빅은 이 모두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쨌든 쿠빅이 임대료도 물지 않고 들어선 부지는 15년 가까이 시장 자리였다. 도심 강변의 요지이지만 런던 땅값의 5분의 1 가격에도 임자가 나서지 않는다.

세계의 다른 도시에서는 대부분 이런 소식을 들으면 난리가 났으리라. 그러나 베를린 사람들은 태평하다. 파티를 즐기는 인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지난해 말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라고 묘사했을 때 대부분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52세의 보베라이트는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는다.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공산당과 연정을 구성한 그는 9월 17일의 베를린 선거에서 승리했다. 반듯한 정장 차림의 보수파인 상대 후보는 지지세력이 전무하다. 보비(보베라이트의 별명)가 골칫거리를 능숙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거의 파산지경이면서도 예산삭감 폭을 최소화해 유권자들의 분노를 피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베를린 주민 중 무려 41%가 정부 보조금(연금, 복지수당, 실업수당)으로 살아가며 20만 명의 공무원이 시의 최대 유권자 그룹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무분별한 관료체제가 기업가들을 괴롭히고 개발을 억제한다고 악명 높다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점에서 베를린은 독일의 더 폭넓은 선거 및 경제적 난제를 상징한다. 대다수 유권자가 오랜, 그러나 오래 지탱하지 못할 질서의 직접적 혜택을 받으며 그 수가 갈수록 불어날 때 어떻게 개혁을 하겠는가.

대다수 베를린 사람의 견해처럼 보베라이트가 단순히 상황의 악화를 막은 게 잘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베를린의 가난하지만 섹시한 특징이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내방객은 22% 증가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베를린의 멋진 클럽에서 놀려고 찾아오는 젊은 유럽인들이 주축을 이룬다. 다른 경제활동의 결여, 그리고 그에 따른 씀씀이 좋은 출장여행자들의 부재는 호텔 숙박비가 아주 싸다는 의미다.

4성급이나 5성급 호텔(비교가능한 통계가 발표된 유일한 항목)의 숙박료가 평균 127유로에 불과하다. 반면 런던은 277유로, 밀라노는 294유로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관광지로서 바르셀로나와 로마를 앞질렀으며 현재 유럽에서는 파리와 런던에만 뒤져 있다. 이 도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실제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소 중 하나다. 바이마르 전성기의 베를린과 다르지 않다.

최근 공식 관광위원회는 웹사이트에 '미성년자 접근금지' 항목을 추가했다. 그리고 다른 여러 곳 중에서도 "손님들이 성적 환상을 행동에 옮기는" 테크노 클럽인 전설적인 킷 캣을 홍보했다.

당연히 새로운 베를린에서는 음악, 패션, 디자인 같은 창작 산업이 번창한다. 이들은 낮은 운영비와 값싼 임대료뿐 아니라 예술가와 반문화적 유형의 사람들이 외부에서 꾸준히 유입되는 덕을 본다. 패션 디자이너 캐롤린 시네무스는 창업비용이 그렇게 적게 드는 도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의 시시 와사비 브랜드는 독일 전통의 트라흐텐에 21세기 풍을 가미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베를린에는 시시 와사비 같은 소규모의 독립적인 패션 브랜드 800개 이상이 모여 하나의 성장산업을 이뤘다. 대부분 생긴 지 몇 년 되지 않는다.

베를린 경제부의 타냐 뮐한스에 따르면 1988년 이후 300개 이상의 영화.TV 프로덕션 신생기업과, 같은 수의 신생 음반사들이 이들에 가세했다. 음반사 모토 무직의 팀 레너 최고경영자는 "베를린은 1980년대 초반의 뉴욕과 같다. 가진 돈은 없지만 아주 창의적이다. 비용이 안 들기 때문에 타협을 적게 하고 더 혁신적"이라고 말했다. 그의 음반사가 탄생시킨 밴드 수퍼700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알바니아인 자매 3명으로 구성됐다.

가장 최근에 베를린의 섹시 풍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집단은 그라프트다. 이들은 자연에 가까운 미래지향적인 형태로 각종 상을 휩쓴 실내 디자인 팀이다. 이들의 디자인 작품은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카지노에 새로 생긴 픽스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초감각적인 호텔 Q를 장식한다. 호텔 Q는 최근 트래블&레저지에서 세계 최고 디자인 호텔로 뽑혔다.

이런 실험은 물론 언제나 베를린의 전매특허였다. 과거 1989년 베를린은 냉전의 반쯤 잊힌 전초기지로서 시민들에게 지급된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기업들도 근근이 버텨갔다. 예술가, 체제 부적응자, 혁명가들이 자신들의 누더기 패션 차림으로 안전하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오아시스였다. 오늘날의 베를린도 다소 비슷한 느낌이다. 이번에는 세계화의 생존경쟁으로부터 상당부분 탈피했다.

물론 이 도시는 붕괴된 교육체제로부터 수십만 개의 일자리 부족 등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부자 도시에서 보내주는 돈에 마냥 매달린다. 이처럼 외부에서의 지원이 풍부하면 보베라이트의 정부는 비용을 줄이거나 기업성장을 촉진하고 세수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베를린이 싸고 멋지고 살 만한 도시로 남아 있는 한 대다수 베를린 주민(그리고 물론 여행객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STEFAN THEI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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