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실종된 자아″배움으로 되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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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공부하는 엄마에게 호감을 갖는 아이들과 대화도 잘 통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심리도 잘 이해 할수 있지요.
또 영문으로 된 신용강·청구서등을 볼줄 알게돼 수출업을 하는 남편의 일손도 덜어주니 새삼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
지난달 29일 오전10시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세학기째 「생활영어」를 공부하는 윤애의씨 (55·서울양천구신정동)는 「늘그막에맛들인 공부의 즐거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이대교정에서는 윤씨처럼 책과 노트를 가슴에 안은채 20대 여대생들과 함께 활보하는 중년여성들을 쉽게 접할수있다.
경제적 안정, 생활패턴의 변모, 주부들의 의식변화에 따라 많은 주부들이『가족에 묻혀 용해된 자아를 찾아 새로 살겠다』고 결심, 발걸음을 배움의 양으로 향하고있다.
이대·숙대·덕성여대등 7개 대학부설 평생교육원, 각 신문사의 문화센터, 백화점들의 주부교실강좌등이 배움에 대한 주부들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장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84년 처음 문을 연 이대 평생교육원의 경우 현재28개과목에 1천5백명이 수강중이다.
교학과장 이자형교수(간호학과)는 『90%이상이 주부이며 그중에서도 40∼50대가 75%를 차지하고있다』고 말했다. 주부 학생들중 1백50명 정도는 개원초기부터 6년간 학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만년학생이기를 고집하는 학구파들이다.
『이미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는 우리들 또래의 주부들은 가족뒷바라지에 바쳐왔던 반생을 돌아보며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아요. 그러나 이곳에 와 우리들끼리 서로 환영하고 선생님들도 우리를 존중해주니 이곳에 나오면 기분이 밝아져요.』 66명의 과대표·부대표가 선발해 학생회장이된 김선옥씨 (54·서울서초구방배동)는 『철학·심리학등의 강의가 자녀교육과 대인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의 경우 어린 자녀들을 맡겨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주부들을 위해 교육원내에 탁아소를 개설했다. 교학과 유석형씨는 『하루1백여명의 주부들이 강의시간 중 어린이를 맡겨놓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
1백30개과목을 개설해3천여명의 주부들이 이용하는 롯데문화센터 역시 수강생을 위한 탁아시실을 갖추고 있다.
김주덕부원장은 『여성들이 자기실현을 위한 재취업에 관심이 많아 그에 맞는 과목을 늘려 개설하고 있고 학생들의 작품전시회등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주부들을 대상으로 월5회정도 그때 그때의 사회적 이슈에 걸맞는 강연을 마련하고 있는 그랜드백화점의 송대승계장(판촉과)은 『몇년전만해도 취미강좌가 주류를 이뤘으나 요즘은 시사문제, 재산관리방법, 자아를 일깨우는 문학, 철학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평생교육원의 경우 가장 인기있는 과목인 동양철학·인간과 사상등의 교실은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해 학생을 되돌려보내야 할 정도.
집 근처의 사설학원등에서 바둑·일어·수영·컴퓨터등 4과목을 배운다는 강숙현씨(48·서울마포구아현동)는 『츨세한 남편, 다 큰 아이들로부터 소외돼 괴로워했던 어둠의긴 터널을 지나 이제 혼자서도 명랑한 하루를 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며 웃읏었다. <고혜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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