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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반 총장' 발목 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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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3일 서울 외교가는 하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새벽에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후 6시쯤 북한 외무성이 "핵 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외교부 청사 주변에서는 "반 장관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만만찮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그러잖아도 북핵 문제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대 장애물로 꼽혔던 사안"이라며 "북한이 이날에 맞춰 위험성을 부각하려고 의도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당장 9일로 예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총장 후보 본선거와 이달 말쯤 열릴 유엔 총회에 혹시 부정적인 파장을 몰고오는 것은 아닌지 주목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노출된 사안이지만 차기 총장 선출 막바지에 돌출됨으로써 예상치 못 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 장관이 유엔의 수장이 될 경우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 중 하나인 북핵 문제를 중립적으로 풀어갈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 장관이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다음에도 문제는 남는다. 핵실험 강행을 위해 북한이 결국 카운트다운에 돌입할 경우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취했던 것처럼 유엔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강력한 대북 제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미국 조야에서 북핵시설 폭격론 등 무력사용 방안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입장에서 마냥 미국 편을 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북한 입장을 헤아리기도 힘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북핵 문제가 두고 두고 반 사무총장에게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반 장관이 그동안 외교부 장관으로서 북핵 외교를 진두지휘해 왔다는 점에서 총장 피선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관계와 북.미 관계에 두루 정통한 반 장관이 오히려 북핵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데 적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안보리 이사국들은 이미 북핵 변수를 모두 감안하고 투표에 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외교역량을 집중해 연내에 핵실험 등 북핵 문제의 급한 불을 모두 끈 뒤 내년 1월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시작한다는 게 반 장관의 복안"이라며 "사무총장에만 선출되면 반 장관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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