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길없는 길 - 내마음의 왕국(7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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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인호 이우범 화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돌아가듯
늙음과 죽음도 또 그러하네.
사람의 목숨을 끊임없이 몰고 가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둠 속에 덮여있구나.
그런데도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투성이
이 몸을 의지해 편하다고 하는가.
욕망도 많고 병들기도 쉬워
거기에는 변치않는 일체가 없네.
목숨이 다해 정신이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지는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
나는 빗줄기 속에서 불타의 법구경을 떠올리고 그의 육성을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대들인 나는 어둠 속에 덮여 있습니다. 어둠 속에 덮인 내가 찾을 등불이 무엇입니까. 부처인 그대가 이천오백년전 서역 한 조그만 왕국의 왕자였다면 나 또한 비록 멸망해버린 왕조의 사생아이지만 나 역시 황가의 피를 타고난 왕자입니다. 왕자인 그대가 왕도(왕도)의 길을 버리고 등불을 구해 마침내 그 등불을 구했다면 나 역시 그 어떤 바람에도, 이천오백년의 세월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을 구해 부처의 길을 떠날 것입니다. 그대가 어린 시절 서쪽의 성문을 벗어나 수레를 타고 들로 나가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바로 그때 그대는 죽은 시체를 앞세우고 슬피 울며 지나가는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지요. 깜짝 놀란 그대는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이냐.』
이미 동쪽 성문 밖에서 늙음의 비참함을, 남쪽 성문 밖에서 병든 사람의 고통을 본 그대는 마침내 서쪽의 성문 밖에서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을 마주치게 됩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죽음이란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가져다 주는 가장 슬픈 일입니다.』
그때 시종의 말을 전해들은 그대는 그 죽은 시체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본 것처럼 충격을 느꼈습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죽음의 길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쪽의 성문뿐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북쪽의 성문을 통하여 꺼지지 않는 등불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내게도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뿐입니다. 그것은 북쪽으로 열린 단 하나의 성문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빗줄기 속에서 나는 내 마음 속에 닫혀있는, 지금까지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하였던 성문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성문은 태어나서 한번도 열려지지 않아 녹슨 빗장으로 굳게 채워져 있는 성문이었다. 나는 그 성문을 열고 그 밖의 세계로 나가리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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