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테마가 있는 여행] 경기 가평 '유명산 숲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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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연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어딘지 비린 듯한 숲의 냄새도 좋고, 우거진 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도 좋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렇다. 나무 이름. 꽃 이름을 줄줄이 욀 필요도 없다. 소리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숲은 충분히 즐겁다.

숲은 산과 다르다. 사람이 범하는 걸 쉬이 허락하지 않은 채 멀찌감치서 우두커니 서 있는 건 산이지 숲이 아니다. 화창한 가을날,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나오라고 시킨 건 아니었다. 그저 숲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숲은 산보다 한참 사람과 가까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라도 느끼면 그저 좋을 뿐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숲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명산 숲학교'(교장 최노석)의 숲 속 수업이 열린 경기도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 경기도 용인의 고림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하루를 보낸 곳이다. 넓디넓은 숲은 아이들에게 교실이 됐다가, 오락실이 됐다. 아이들은 30여명씩 모두 6개의 조로 나뉘었다. 그리고 숲 곳곳에 마련된 6개 학습장 앞으로 흩어졌다. 학습장마다 숲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나섰다.

◇ 애벌레가 되다

"신발하고 양말 모두 벗으세요."

숲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이들, 이내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는다. 숲 선생님의 지시가 계속된다. 아이들을 두 줄로 세우더니 기차놀이를 하듯 앞 아이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게 했다. 그리고 하나씩 나눠준 안대를 쓰라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애벌레가 되는 거예요. 애벌레는 온몸으로 숲을 기어다녀요. 앞을 보지도 못하죠. 애벌레는 온몸이 눈이랍니다. 그 기분을 느껴보세요."

드디어 전진. 조심조심 한 발짝씩 내딛는다. 맨발바닥에 이물질이 바로 와닿는 느낌. 비명이 터진다.

"아야! 따가워요!" "어? 여긴 푹신푹신해요." "재미있다!" "뭐가? 꼭 바보가 된 거 같은데."

신이 나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 연신 투덜대는 아이들. 제각각이다. 그 순간, 숲 선생님이 소리를 친다.

"새가 나타났다! 피해요."

모두가 주저앉는다. 최대한 몸을 움츠리라는 말에 길게 늘어섰던 아이들이 잽싸게 모여든다. 이후로도 여러번 '공습'과 '공습 해제'가 이어졌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행동은 민첩해졌다. 훨씬 환해진 얼굴로 아이들은 '사람'으로 돌아왔다. 숲 선생님도 환해졌다.

"지금까지 오늘처럼 맨땅을 밟아본 사람? 없죠? 그럴 거예요. 자연을 느낀다는 게 별 게 아니랍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된답니다."

◇ 숲과 놀다

프로그램은 계속됐다. 나무 밑둥에 새겨진 나이테를 보고 나이를 읽는 것도 배웠다. 나이테에서 자신의 나이 열한살을 찾아내자 그저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이 나무는 나보다 다섯살이나 더 먹었네. 형이잖아."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그 나뭇잎이 어떤 나무에서 떨어진 건지 나무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한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모양새는 분명 솔잎인데 근처에 소나무가 안 보였다. 숲 선생님이 나선 뒤에야 '미스터리'는 풀렸다. "이건 솔잎이 아니에요. 잣나무 잎이에요. 비슷하게 생겼죠? 바늘처럼 가느다란 게 삐죽삐죽 나와있는 생김새가. 이렇게 이파리 끝이 다섯개면 잣나무 잎이에요. 솔잎은 두개랍니다."

아이들이 가장 뿌듯해 한 건 직접 화분을 만들 때였다. 모종에서 화분으로 옮겨심고, 부엽토를 깔 때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모습이었다. 연보라색 꽃을 피운 식물이 '범의 꼬리'라는 한국 야생화란 사실은 바로 잊어먹었다. 그래도 혹여 떨어질까 두 손으로 꼭 붙들고 다녔다.

◇ 숲은 살아있다

다시 비명이 터졌다. 벌레 잡기 학습장. 기겁을 하고 달아나는 여학생들을 향해 악동 녀석이 애벌레 한마리를 들고 뒤쫓아간다. 여학생이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자 소동은 그쳤다. 조용히 아이들을 뒤따르던 담임 선생님의 '맴매'가 바로 행해졌다. "벌레가 살아야 흙이 살고 흙이 살아야 나무가 살고 우리가 산다"는 설명에 귀기울이는 애들은 드물었다. 꼬무락꼬무락 움틀대는 벌레들과 장난치는 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도 숲 선생님은 개의치 않았다.

하루종일 숲 속에 있었지만 아이들은 풀 이름 하나 제대로 외지 못했다. 다만 숲에서, 숲과 함께 놀았을 뿐이다. 뒹굴기도 했다. 숲에 누워 숲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모든 게 정지한 듯 조용하기만 한 숲. 아이들이 진탕 뛰어노는 그 순간에도 숲은 살아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걸 느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하루 아이들과 숲의 거리가 한참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가평=손민호 기자

변선구 기자

*** 숲 탐방 프로그램은

현재 전국엔 모두 90개의 자연휴양림이 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유 휴양림은 30개, 지자체 운영은 46개, 개인 소유는 14개다. 숲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숲 체험 프로그램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흔한 경우가 숲 생태 전문가와 함께 하는 숲 탐방이다. 숲 생태 전문가들이 풀과 나무의 특성을 설명해주며 숲 탐방을 동행한다. 무료다.

숲 탐방 프로그램은 해마다 5월부터 10월까지 전국의 국유 휴양림에서 주말마다 진행된다. 특별한 예약 없이 현장 안내소에서 신청만 하면 된다. 개인 소유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휴양림도 숲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개별 휴양림마다 사정이 다르다. 휴양림마다 확인해야 한다. 11월부터 6개월 동안에도 숲 탐방은 가능하다. 자원봉사자나 산림청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휴양림에 미리 부탁을 해놔야 한다. 전문 숲 해설가를 부를 수도 있다. 숲 해설가 협회(www.foresto.org)에 신청하면 원하는 날짜.장소에 맞춰 숲 탐방을 할 수 있다. 약간의 수고료만 내면 된다. 보통 '참가 인원 15인 이내, 경기도 지역 휴양림, 2시간 탐방'에 5만원이다. 02-747-6518.

일반 기업.시민단체 등이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을 모집하기도 한다. 유명산 숲학교가 이런 경우다. 일반 숲 해설보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전문적이다. 전국의 자연휴양림 등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산림청 홈페이지(www.foa.go.kr) 참조. 문의는 산림청 산림문화과(042-481-4242).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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