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기끄는 「노래부르기 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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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주부문화」가 크게 바뀌고 있다.
가전제품 서비스산업의 발달로 가사노동에서는 상당부분 일손이 덜어졌지만 오히려 그들은 더욱 바빠졌다. 현대리서치연구소가 88년 서울 중산층 주부를 대상으로 한 하루생활시간조사에서 주부들은 집안일·수면시간 등을 제외한 「자기시간」을 하루평균 약 7시간정도 갖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부들은 이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 남편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새로운「주부문화」를 가꾸고 있다. 주부들이 형성해가고 있는 그들의 생활문화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23일 오후3시 서울여의도 D문화센터 402호실, 1백50여명의 주부들이 빼곡히 들어차 앉아있다.
노래 지도자 구지윤씨(46)의 피아노반주에 맞춰 『옥경이』와 『창부타령』을 흐드러지게 불러 젖힌 주부들은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된 듯 밝은 표정들이다.
『우리가 신나서 노래할 때는 슬픈 노래도 밝아집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처져있으면 그만큼 더 맥이 빠지는 법이지요. 어디까지나 즐겁게, 우리가 오늘 노래부르는 이만큼의 즐거움으로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빌도록 합시다.』 서울 장안에서 「주부 조용필」이란 애칭을 갖고 있는 노래부르기 교실 강사 구씨의 마무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제 그랬었냐는 듯 모두「점잖은」 부인내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부들의 노래부르기 교실은 근래 들어 가장 인기있는 강좌가 됐다. 중앙일보사 문화센터등 각 언론사가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말할 것도 없고 동방플라자·현대백화점·잠실롯데백화점등 각 백화점의 문화센터·서울YWCA강남지부·가정법률상담소교육원 등 사회단체 프로그램으로까지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다.
이 같은 「노래부르기 열풍」은 MBC-TV 『주부가요열창』 프로그램 탄생으로까지 이어졌고, 83년 노래부르기교실 첫 강사로 선보였던 구씨를 일약「주부들의 스타」로까지 부상시켰다. 그간 그를 거쳐간 문하생만도 2만여명에 이른다는 추산이고 보면 노래부르기에 대한 주부들의 엄청난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부 이계향씨(61·서울금호동)는『노래를 좋아하지만 짐에서는 큰 소리로 부를 수 없어 답답했는데 노래강좌에서는 목청껏 부를 수 있어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1년째 노래부르기 강좌에 다니고 있다는 주부 김귀순씨 (44·서울 신월4동)는『평소 스스로 우울증환자라고까지 여길 정도였으나 노래를 부르면서 밝은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돼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졌다』면서 『지난 일요일 남편 친구모임에서도 자신만만하게 노래를 불렀더니 주위에서 모두 놀라더라』고 자신의 달라진 삶을 얘기했다.
어디에서나 당당한 존재이기를 원하는 주부들의 의식변화는 각종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가는 것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지난 4월말 (주)논노가 주최한 제2회 논노 베스트드레서 선발대회에서 총 응모자 2만명 중 8천여명이 기혼여성이었다는 사실은 그 좋은 예. 이 가운데 이경희씨(34·서울사당동) 등 2명의 주부는 금상 수상자로까지 선정됐다.
또 여성잡지의 1일 주부모델로 당당하게 패션화보촬영에 나서는 이들도 많다. 이제 주부들은 더이상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 부덕으로 칭송됐던 「점잖음」은 이제 더 이상 주부들의 덕목이 되지 못하는 추세에 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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