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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살(殺)의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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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32강전 하이라이트>
○ . 후야오위 8단 ● . 이창호 9단

지난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벌어진 춘란배 8강전에서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이 동시에 탈락한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중국한테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그런데 '李-李 쌍두마차'가 동시에 쓰러진 것은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이날의 패배는 '광저우의 치욕'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분기점으로, 영영 기록될지 모른다.

장면1(86~99)=이창호 9단은 하변을 멋지게 허물었다. 그러나 후야오위(胡耀宇) 8단이 86으로 지킨 시점에서 계가를 해보니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87로 한 수 던져본 이창호 9단은 드디어 '대마 총공격'의 결단을 내린다. 91, 93을 선수하고 95로 씌워 노골적으로 잡으러 간 것이다.

이창호 9단에게 이런 '살(殺)의 바둑'은 지극히 드물다. 후야오위도 이창호의 그런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여태껏 대마를 방치해 둔 것이다. 그러나 이창호도 변했다. 과거처럼 끝끝내 기다리지는 않는다. 자신의 계산력이 전보다 떨어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장면2(100~109)=후야오위는 깜짝 놀라 수습을 서둔다. 사실 이창호가 칼을 빼들었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너무 집을 밝혔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그러나 이젠 외길이다. 자체로 사는 길은 없으니 흑의 포위망을 헤집고 나가야만 한다. 뚫느냐, 막히느냐. 이것이 승부다.

104로 나가 106으로 끊었다. 이곳이 유일한 틈새다. 어려운 대목에서 이 9단은 109로 조용히 웅크린다. 사태가 험악할수록 덤비면 안 된다. 109는 문자 그대로 정중동(靜中動)의 한 수이자 최선의 한 수. 과연 대마의 사활은 어찌 될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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