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불신병」의 처방/차하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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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자주 인용되는 가운데 점퍼차림으로 시장에 들른 대통령이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의 물가고 항의에 당혹해 했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난국의 심도는 피부로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가 난국이란 표현대신 중병이란 비유를 빌린다면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더 분명히 사회병리의 측면에서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들 정치자체 회의
우리가 앓고 있는 병중에서도 불신이란 병은 결코 가벼이 넘겨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불신이란 단어가 언론에서 들먹거리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시피 일상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불신풍조는 가위 고질적인 만성병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스승과 제자간에,직장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간에,생산업체에서는 노사간에 서로 상대를 못믿겠다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라 하겠다.
그러나 무어니해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그 정도는 심각해서 정부가 한다고 말하면 안하는 것으로,안한다고 발표하면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헌은 안한다고 공언하고 난 후 개헌했고 화폐개혁이 절대로 없다고 발표하고 얼마후 단행했으며 금리인하는 고려한 바 없다고 하면 뒤따라 인하되었고 공공요금 인상이 더는 없을 것이라 공표한 뒤 인상되는 등의 국민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지않은 국민이 정부와 여당을 믿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야당까지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나아가서는 정치 그 자체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불신은 오랜 세월을 두고 앓아온 병으로 적어도 그 병역이 한국전쟁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이점에서는 이른바 6·25신드롬(증후군)이 남긴 깊은 충격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정부가 사태의 위급함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국민을 기만한 데서부터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비롯되었다. 서울에 인민군 탱크가 들어오기 전날 밤 폭우속에 이승만과 고위공직자들은 수원으로 혹은 대전으로 도주하고 난 뒤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서울 시민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날 저녁까지도 정부는 라디오를 통해 국민을 안심시킨 바 있었다. 이때 벌써 정부발표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피난길에 올랐고 그 반대로 하늘같이 정부의 발표만을 신뢰한 착한 시민들은 서울안에 갇혀 고생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는 정부 말을 믿지 않으면 유리하게 되고 도리어 고지식하게 믿으면 화를 자초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정부 불신의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더욱이 기가 찰 일은 당국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에 석달동안 죽을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시민을 배신자로 몰아세운 정부의 해괴한 태도였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배신자라 해야 옳은가.
서울 수복후에도 정부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려 들지 않았고 그보다는 정권 연장에 더 큰 힘을 기울였다.
○정부말 믿으면 되레 화
그러므로 3·15 부정선거는 국민의 정부불신을 더욱 부채질해 놓았고 그 결과가 4·19혁명에 의한 이승만정권의 실각이었다.
이 불신의 역사는 집권당과 정부가 몇차례 바뀌었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질적으로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정치가 민주당 정부,5·16 군사정권,유신정권,전두환정권을 거쳐 지금의 6공화국에까지 이어졌다.
이 동안의 모든 정부,모든 정당은 국민의 신뢰회복에 주력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계수치의 조작,정책의 조령모개,무책임한 행정을 예사로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 정부불신의 또다른 이유는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주역출연진이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누차 식자들이 지적한 것처럼,예컨대 공화당 시절의 인물들이 유신정권에 등장했고 다시 전두환 집권시기에 등용되었으며 민정당을 거쳐 지금의 민자당시대에 와서도 정책결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정치 아래에서라면 정권이 바뀜과 함께 담당층도 달라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정치담당층이 거의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사고의 전환이 가능하며 개혁의 전망이 설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는한,역사의 과오는 청산될 수 없고 단계적인 사회발전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끝으로 그렇다면 국민의 정치불신은 어떻게 불식될 수 있을까. 그 처방으로 다음의 세가지가 지적될 수 있다.
첫째,정부는 충분하리만큼 많은 사실들과 정확한 통계수치를 가능한한 공개해야 한다. 사실과 정보를 함께 나누는 일은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다.
둘째,일관성있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법률개발,경제및 금융재정 운용,교육문제,성장과 개발,국방과 외교 등 주요부문에서의 정책수립과 시행에서 계통적인 일관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실적 상황에 따라서는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거나 시행착오를 바로잡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하지만 명심해야 할 일은 조령모개식 착상이나 임시방편의 미봉책을 내놓으면서 갈팡질팡하는 시책이야말로 불신의 근원이란 점이다. 이것은 최근에 물가·부동산·증권시장·수출입 등 분야에서 너무나 명백히 실증된 바 있다.
○정치 담당층 달라져야
셋째,정치인의 자질이 향상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후보때와 당선 후의 대조적인 태도는 실로 어처구니 없다. 후보때에는 당선을 읍소하면서 땅에 머리가 닿도록 절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자리다툼이나 이권청탁에 뛰어다니고 정쟁에 골몰하며 민생문제를 제쳐 놓을 때 선거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 아니다. 정치인의 질적 수준이 향상될 때 비로소 국민은 정치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서강대부총장·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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