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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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
산이 떠오른다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온
사림 한 척이 닻을 내린다
산은 아직 미명이다
이윽고 높은 다락에서 들려오는
나라 큰 스승의 기침소리
숲 속의 이슬들이 일제히 잠을
깨고 뜰에는 모란이 빛을 터뜨린다
물러들 가라
물러들 가라
문밖에서 기다리던 칙명이 돌아가고
도산일곡이 바람에 실린다
2
배가 떠난다
칭병의 노인이
마침내 붓을 뗀 성학십도가
돛으로 하늘에 오른다
낙동의 물이 큰 소리로 운다
나라 안에 불이 켜지고
햇살처럼 퍼지는 왕도
나랏님도 차마 바로 우러르지 못하는
높디 높은 추녀에 사액이 걸리고
시사단이 물 위에 둥실 떠서
제 그림자속의 한 시대를
건져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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