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궤도서 탈선한건 아니다/영 파이낸셜 타임스지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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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한국경제는 중대하고 어려운 조정국면을 맞아 혼란양상을 맞고 있으나 현 상황이 위기국면에 놓인 것은 아니며 경제위기론은 한국정부의 의도적 위기론 유포에 따른 것이라고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전문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경제의 위기론이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한 의도적 위기유포 외에도 두자리 성장에 익숙해진 한국국민들의 조급성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한국경제가 당면한 구조조정 작업이 실패할 경우 진정한 위기는 그때 가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이날자 10페이지에 걸친 한국특집에서 정치ㆍ경제ㆍ산업ㆍ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한국의 현실을 분석했다. 이 신문의 특집기사중 「흙무덤이 정말로 태산이 될 때」라는 제목의 한국경제위기론에 대한 내용을 요약,소개한다.<편집자주>…○
◎위기론은 정부서 유포한 “엄살”/성장 조급성ㆍ실정이 침체 불러
【본사특약】 7%의 경제성장이라면 대부분의 정부지도자들은 앞다투어 국민들앞에 성공담을 늘어놓으려 하겠지만 한국에서의 7% 성장은 경제각료의 대폭 교체라는 외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의 논리에 떼밀려 작년 한햇동안 대부분의 비경제 각료들은국민들을 상대로 위기론을 펴들고 다니기에 바빴고,그 결과 노조의 임금인상요구가 완화되고 노사분규가 줄어들며,형평을 내세운 경제개혁정책이 퇴조하는등 대기업과 정부내 보수파의 목적이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대재벌들은 이른바 「위기」를 내세워 정부로 하여금 금융실명제를 포함한 과감한 개혁조치를 포기케하고,대기업에 대한 정책적 특혜를 유지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개혁파 경제각료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해 볼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채 쫓겨나고 말았다.
현재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은 80년대 행운의 3저현상에서 비롯된 두자리 고도성장에 지나치게 익숙해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경기의 하향국면이나 변화하는 경제여건에 대한 준비가 거의 안돼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최근의 경기침체가 지난 87년 이후 연평균 20%에 달하는 폭발적 임금상승과 88년 한햇동안에만 16%가 절상되는 등 대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급격한 절상등 두가지 요인에 기인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개혁정책을 포기하고,수출우선 정책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른바 「총체적 위기」를 구성하느냐는 문제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는 불가피한 구조조정국면을 맞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대규모 노사분규에 겁을 먹은 대기업들이 투자를 소홀히 해왔고 외부여건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같은 상황에서 일본이나 대만기업들은 재빨리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군살을 빼며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경제팀을 성장우선론자들로 바꾼것은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쪽으로 고도화한다는 측면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재벌들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했다는 인상만 근로자들에게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80년대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경제는 지난해를 고비로 하향국면으로 들어섰으나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돼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경제가 정상궤도에서 탈선한 것은 아니며,더구나 어떠한 정상적 의미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진짜 위기를 피하기 위해 힘들고도 중대한 구조조정작업이 필요할 따름이다. 위기론에 의해 문제점이 실제보다 과장돼 있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먼 앞을 보지 못하고 단기적인 효과에 급급,경제정책을 자주 급선회하는 데 있다.
한국과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은 인내심이다. 기업들은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단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고,정부는 정부대로 2년이라는 최소한의 시간도 주지않고 경제팀을 갈아치우는등 대단한 조급성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경제팀에는 속전속결주의자들과 보수성짙은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한국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그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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