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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개편 서두는 세계군수산업|평화무드 확산따라 침체 장기화될 듯|상업·민수용으로 대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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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군수산업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고있다.
한동안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막대한 이득을 보강해주었던 무기장사가 동서 데탕트의 확산과 본격적인 군축논의, 이란-이라크전의 종전 등 각종 「악재」를 만나 시장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계 군수업체들은 평화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최근 3년 동안 전례 없는 침체를 겪어 인원의 감축, 신시장 개척을 위한 세일즈의 강화, 민수 분야로의 전환을 위한 대대적인 산업구조 개편 등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수산업계가 겪고있는 현재의 곤란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고도의 응용기술을 통신·반도체 등과 접목시켜 상업용 민수 기술화하려는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있다.
과거 동서냉전의 격화시기에 우선적인 자금지원을 받았던 소련의 군수업체들은 이미 탱크생산시설을 이용, 트랙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자체 독립채산제도의 도입에 따른 재원확보를 위해 SS-20미사일과 같은 로킷발사대 생산공장들과 소유스 우주선 생산공장들이 서방의 자본을 끌어들여 발달된 우주기술을 민수용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동서냉전의 완화, EC지역에서의 군비감축 움직임 등 최근의 환경변화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미국의 군수업체들이다.
이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국정부의 국방예산 삭감에 따른 국내시장의 축소, 이란-이라크전의 종전으로 인한 신시장 개척비용의 증대, 방산 분야에서도 통합된 단일시장 형성을 꾀하고 있는 유럽계 회사들의 공세 등으로 아주 심각한 위기를 맞고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인 디펜스 뉴스는 최근호에서 미국기업들이 세계최대의 구매자인 미국방생에만 매달리다보니 유럽계 회사들보다 마킷세일즈 기능이 저하됐으며, 이제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해 새로운 판매기법의 개발, 업종전환 등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디펜스 뉴스지에 따르면 미 군수산업계의 매출규모는 연간 3천억 달러로 유럽의 연간 1천6백억 달러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유럽계 군수업체들은 약36%를 해외시장에 판매하고 있으며 항공우주산업분야만 따지면 평균 61%정도를 해외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계 회사들은 그 동안 미국방성이라는 세계 최대의 고객을 확보함으로써 안일한 판매자세에 길들여졌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최근의 환경변화로 장기적으로는 민수 분야로의 진출을 꾀하면서 우선 판매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감축, 업무효율화의 추진, 유럽계회사들과의 협력강화 등을 꾀하고 있다.
이미 휴스항공사, 덱사스 인스트루먼트사, 맥도널 더글러스사 등 미국방생의 군수계약업체들은 군수관련 인원을 감축했으며 로크웰 인터내셔널사 등은 유럽 내에 자회사를 세우고 유럽계회사와 제휴를 강화했다.
또한 IBM·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 등은 최신 반도체개발 프로그램인 「유럽합동 서브마이크론 실리콘」계획에 참여를 요청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모터롤러사의 경우에서처럼 군수분야에만 이용되던 응용주문형 반도체(ASIC) 등을 민수용 제품에 접목시켜 새로운 제품 혁명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일고있다.
모터롤러사는 ASIC를 휴대형 무선전화기에 이용, 일반 메모리칩을 사용한 일본산 무선전화기보다 크기는 절반정도 작으면서 성능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현재 구미의 군수업체들은 모터롤러사의 성공을 전례로 삼아 디지틀 이동 통신장비, 고주파통신장비, 고화질(HD)TV, 디지틀 무선프로그램 개발 등에 ASIC등 각종 군수용 응용기술을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의 전자산업진흥회 등 전문기관들은 ASIC를 HDTV의 개발에 이용할 경우향후 20여년 동안 1천4백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HDTV 분야에서 일본계 회사들에 대해 확고한 기술우위를 지킬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사실 기술의 정밀도에서 민간부문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미국의 군수업계는 최근의 환경변화가 통신·반도체 등 일부 첨단분야에서 일본에 정상의 자리를 빼앗겼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는 반도체도 군수용에 이용되던 ASIC에 비하면 정밀도가 크게 떨어지는 대용량 메모리칩에 불과하고 통신기술도 미국의 모터롤러사, 영국의 플레시사 등이 군수용에만 국한했던 디지틀 무선신호체계의 민수화에 성공한다면 역전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이들은 ASIC제조기술등 특수한 군수용 응용기술의 일본 이전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이를 이용한 첨단제품혁명의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있다.
그러나 군수업체들의 민수 산업으로의 전환이 그들의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군수업체들의 성공여부는 고가소량 생산을 전제로 해온 군수기술을 어떠한 방법으로 저가다량 생산화 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주문형 소량생산에 익숙해 마킷세일즈를 등한시해온 그들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경쟁을 펼칠 경우 제품의 수준은 차치하고 마키팅기술의 부족 등으로 소비자들의 정확한 요구를 읽어내는데 상당기간 곤란을 겪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모터롤러사, 필립스사 등과 같이 민군수겸용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군수업체들이 그들의 군수용 기술을 민수용으로 전환시키는데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들의 민수시장 진출과정에 시행착오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모터롤러사의 무선통신기 시장 진출의 경우에서 보듯 기존업계에 상당한 도전으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고 보고있다. 〈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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