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어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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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강북에 사는 사람에게는 강남의 예식장에 가야할 청첩장을 받는 것이 몹시 곤혹스럽다. 축의금 부담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그곳에 다녀올까 하는 교통편 걱정때문이다. 한낮 한남대노의 교통체증은 가위 지옥이라 할만하다. 교차로하나를 지나는데 길게는 6번 정도의 신호를 받아야하니 한번에 2분 이라쳐도 12분은 기다려야 교차로를 건널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왼쪽 2개의 좌회전 차선은 별로 붐비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얌체 승용차나 기다리기에 지친 직진차량들이 이 차선으로 들어선다. 이 때문에 직진신호가 떨어지면 좌회전차선에 있던 얌체직진차량들이 직진차선에서 앞으로 나가려는 차들의 앞을 고속으로 가로지르거나 끼어들어 일대 혼잡을 일으키곤 한다. 이런 얌체같은 차선 끼어들기는 한남대노뿐 아니라 서울시내 도처에서 일어난다.
묘안은 없을까.
필자는 지난 71년말 미국에서 학위논문도 거의 마치게 되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그 유명한 마이애미로 여행을 떠났다. 고속도로가 직접 마이애미 시내로 들어서면서 차선은 갑자기 편도 4차선으로 불어났다. 도로 위를 가로지른 교통표지판을 보랴, 차선 위에 쓰여진 방향을 보랴 정신이 없는데 차들은 여전히 시속 70마일(1백12km)로 달린다. 내 작은 폭크스바겐이 이 틈에 끼여 찌부러질 것만 같다.
약간 차선이 덜 붐비는 왼쪽차선에 들어섰더니 아뿔사, 이 차선은 아예 에버그린 국립공원쪽으로 가는 전용차선이다. 아무리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틈이 없으려니와 무리한 끼어들기는 포기하는게 좋겠다고 생각됐다. 한 3마일 달리고 나니 벌써 마이애미교외여서 목표했던 마이애미비치까지 30마일이나 돌아야했다. 왜 미국에서는 끼어들기를 잘 안하는가. 그것은 접촉사고의 모든 책임이 끼어들기 차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끼어들기 차에 모든 손해배상을 물린다면 아마 끼어들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아무튼 끼어들기는 극장표나 귀성차표를 살 때의 새치기처럼 우리 모두를 분노케하며 올바른 자동차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장애를 주는 행위임을 알고 운전에 임해야겠다. 교통당국이여,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시라, 위험한 상황에서 어거지로 끼어드는 차라도 뒤를 받으면 뒷차에 책임을 물리는 것이 얼마나 억지인가를. 끼어들기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
김천욱 <연세대공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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