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해도 너무한 국책은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국은행이 청원경찰과 운전기사에게 주는 돈의 반만 받겠습니다. 제발 저를 채용해 주세요. 화장실 청소, 커피 배달 등 모두 가능합니다. 야근도 하겠습니다' '의경으로 제대했고요. 한국은행 청원경찰을 시켜주시면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영어.일어도 가능하고 1종운전면허가 있어 운전도 겸임할 수 있습니다'….

27일 한국은행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실린 글 중 일부다. 한국은행에서 일하는 청원경찰과 운전기사의 연봉이 최고 9100만원이라는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다. 얼핏 보기엔 '나를 좀 채용해 달라'는 호소다.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분노와 비애가 절절히 배어나온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주는 한국은행에서 이래도 되는거냐"는 항변이다. 한은의 게시판에는 욕설을 써가며 국책은행의 방만함을 비판하는 실명 의견도 많았다. 한은뿐만이 아니다. 공적자금을 받은 우리은행 은행장 연봉이 12억6000만원이다. 산업.우리 은행은 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은 직원들의 등급을 올려 1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쏟아지는 비난을 의식한 듯 한은은 27일 갑자기 '중장기 경영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일반 직원.서무 직원.청원경찰 등이 일정 기간 근무한 이후에는 임금이 더 이상 오르지 않도록 제한하는 호봉 승급 상한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성태 총재가 취임한 이후 추진해 오던 혁신 방안"이라고 했다.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뢰가 안 간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국책 기관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운전기사.청원경찰의 고액 보수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책은행들은 병폐와 적폐는 임금만이 아니다. 한은의 경우 업무 전산화와 인터넷의 발달로 업무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16개 지역본부와 3개 지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업은행은 지점 업무량이 계속 줄고 있는데도 지난해 지점 3개를 신설했다.

'국책은행들이 내부 살림을 그렇게 엉망으로 하는데 국가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겠느냐'.

한 시민이 인터넷에서 한 지적이다. 대체 국민은 언제까지 '봉'이어야 하는가.

정철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