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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기업 환경을 개선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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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핵심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항상 시장은 불공평하고 실패하는 것이고, 모든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고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 지역균형 발전정책, 분배 복지정책 등 현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 몇 개만 봐도 과거 어느 정부보다 정부의 직접 개입에 의한 문제 해결 의지가 두드러진다. 무슨 일만 터지면 허가제, 인가제, 등록제, 가격 규제, 세금 부과, 할당제, 의무고용제를 들고 나오는 현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야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 현 정권이 언제 그렇게 관료 조직의 능력에 신뢰를 가지게 됐는지 의아하다. 아마 정부를 직접 관리해 본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는 공익을 대표하고 공익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당위론에 빠져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행정학과 경제학의 많은 연구 결과는 정부의 실패가 시장 실패보다 더 구조적이고 일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조직의 비효율성과 관료주의는 예외적인 현상도 아니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의 문제도 아니다. 공공조직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공공부문의 비중이 크고 자원 배분에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가 심하면 민간경제가 위축되고 효율성과 성장잠재력이 저하된다.

정부 기능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 중 하나가,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면 더 공평하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미신이다.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에 그렇게 유능하다면 왜 모든 것을 정부가 계획하고 관리하던 사회주의국가들이 빈곤을 면치 못했을까. 말이 좋아 정부지, 정부가 자원 배분을 담당한다는 것은 누가 어떤 물건을 만들어 누구에게 나눠줄지를 정치인과 관료들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과 관료들이 누가 제일 잘 만들고 누가 제일 필요한지를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자원을 배분하면서 공익의 이름으로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다자녀 가구에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겠다고 한다. 도대체 아파트 나눠주는 일과 자녀 수가 무슨 상관인가? 내 땅을 사는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신고하고, 그 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공무원에게 허가받으라고 한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황당한 규제다. 이런 규제를 공익과 정책의 명분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일그러진 현실이다.

자원을 정부가 배분한다는 것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예쁜 놈 떡 하나 더 주고, 미운 놈 굶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남용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오랜 관치 계획경제의 전통을 가진 구사회주의국가들이 지금도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관치경제의 영역이 큰 나라일수록 비효율적이고 부패가 만연된다.

현 정부 사람들의 순수하지만 비전문적인 정부 기능에 대한 맹신이 정부 조직과 권한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있고, 이것은 결국 민간경제 활동의 위축과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마침 어제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세계 125개국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지난해에 비해 다섯 단계나 하락했고, 그 배경으로 한국 정부의 비효율성이 지적됐다.

기업들의 민원성 요구 백 몇십 개를 들어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기업환경 개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 기업환경을 개선하려면 정부 능력과 효율성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함께, 정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