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왜 한씨의 꿈 깨려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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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필성씨 가족의 고향방문을 계기로 이산가족의 재회가능성을 열망하던 실향민과 국민들이 다시 실망을 맛보게 됐다. 40년만에 8순 노모를 만난 뒤 남한으로의 귀환을 보장해달라는 한씨의 요청을 북한측이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그의 방북 꿈이 무산될 처지에 이른 것이다.
지난 3월 일본 삿포로에서 한필성씨 남매가 재회했을 때의 감격은 비단 당사자들뿐 아니라 온 국민의 감격이기도 했다. 평양의 한씨 노모가 전화통화를 통해 『전화로 말할 게 아니라 이곳에 와서 만나자』고 얘기했을 때 누구나 그의 방북이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더구나 노모의 이름으로 한필성씨를 초청하는 서한이 오고나서는 또 다시 그 감격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다. 한씨 가족의 상봉은 남북한 이산가족 재회의 물꼬를 틀수 있다는 상징성때문에 온 국민이 주시해온 것이다.
그러나 온 국민의 이러한 비원은 인도주의를 내세워온 북한측의 비인도적인 태도로 쓰디쓴 환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하고 북한의 남한 귀환보장만을 기다리던 한씨 부부에게 북한은 적십자사를 통해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한씨 부부가 남쪽으로 돌아가는 문제는 한씨와 한씨 어머니등 가족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통보했다.
이 통지문내용은 또 『노모의 소원대로 한씨와 일가족을 모두 평양에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얼핏 한씨 가족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으나 한필성씨 본인의 자유의사는 전혀 무시하는 자가당착의 주장이다. 10명의 가족중 본인 부부 두사람만이 가겠다는 한씨의 자유의사를 북한은 어째서 외면하는가. 또 노모를 만난 후 돌아오겠다는 한씨의 의사를 왜 존중해 주지 않는가.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결국 한씨의 고향방문을 북한측이 거절한다는 것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호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씨 가족의 재회문제를 놓고 북한은 인도적 명분을 내세워왔으나 그 뒤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는 석연치 않은 태도를 여러차례 보여왔다.
북한당국은 오래 남북으로 떨어져 살아온 한 가족의 자유로운 재회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냉혹한 자로 재고 있음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북한이 내외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경직된 체제의 불안에서 벗어나 최소한 인도주의적 남북교류부터 트는 노력을 보이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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