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증시 외국인 지분 40%…어떻게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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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줄기차게 사들이는 반면 국내 기관과 개인은 계속 내다팔면서 증시의 외국인 투자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22일 현재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중 외국인 비중은 39.7%(1백31조원)로 40%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주요국 증시를 비교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우리 국부(國富)가 외국인 손에 집중되고, 기업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에 휘둘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 환경이 급변하면 외국 자본은 언제든지 국내 증시를 떠날 수 있다.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를 떠받치고 있지만 증권시장의 변동성도 그만큼 켜졌다.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박사)

그러나 기업이 주식을 공개한 이상 굳이 국내외 주주를 차별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의 투자풍토를 선진화하고 있으며,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과 주주 우선 경영에도 기여하고 있다. "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우량기업이 외국인 유인=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량기업들이 적잖이 포진해 투자 매력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기업들의 지난8월말 현재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로 미국의 21배, 일본의 81배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식가치가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엔 특히 세계 경제의 회복 기대감 속에 아시아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그 중 일부가 한국으로 흘러들고 있다.

박만순 미래에셋증권 상무는 "오랜 불황으로 주가가 너무 떨어진 일본과 성장 속도가 빠른 아시아 각국 증시로 국제 자본이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며 "최근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이 급증했지만 절대금액으로는 일본과 대만에 못미친다"고 말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선 경기가 좋아지면서 유동 자금이 주식형 펀드로 몰리고 있다"며 "특히 한국 등 신흥시장에 일정 부분을 자동 투자하는 이머징마켓펀드와 아시아퍼시픽펀드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시 선진화에 기여="외국인 투자는 국내 증시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기업의 경영 성과가 주가에 즉각 반영되게끔 도와주는 측면이 있다. 결국 경영의 생산성이 높아져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선정훈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외국인의 비중이 확대되면 기존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도 생긴다.

실제로 국내 증시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요구에 따라 공정공시 제도를 도입했고, 소액주주들의 권한도 한층 키웠다.

유시왕 삼성증권 고문은 "외국인들은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주식투자 행태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이다"며 "오히려 단기차익만을 얻으려는 국내 투자자들의 행태가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아왔다"고 지적했다.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국내로 유입된 주식투자 자금의 80% 가량은 장기투자 성향으로 파악됐으며 외국인들의 매매회전율은 내국인의 3분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성철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외환위기와 같은 돌발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외국인 투자는 증시의 저변을 넓혀 주가 흐름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에도 대비해야=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4월 갑자기 SK네트웍스의 대주주로 등장한 소버린의 경우처럼 외국인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의사를 드러내며 경영 간섭에 나설 경우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쓰면서 경영 에너지를 소진할 수 있다.

이필호 신흥증권 리서치팀장은 "외국인의 자금이 갑자기 국내 시장에서 이탈해버리면 주가나 환율이 타격을 받게 돼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며 "해외변수나 외국인의 동향에 따라 주가의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회복세를 보이던 중남미 경제는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사태로 외국 자본이 급격히 이탈하면서 주식.환율 시장이 붕괴돼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기도 했다.

엄태종 삼성투신운용 글로벌본부장은 "외국인의 비중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펀드의 만기를 2~3년으로 늘리는 등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고, 연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은 감사원 등으로부터 너무 단기적인 투자성과를 강요받아 마음놓고 우량주식에 장기 투자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김동호.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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