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시평] 파병 이익 누구에게 돌아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우리 정부가 이라크에 추가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파병은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국익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첫째는 경제적 이익일 것이다. 혹자는 전쟁 참여가 불황에 빠진 우리 경제에 돌파구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파병한다면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지역의 유전 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런 사람들의 희망이다. 심지어는 어느 대기업의 건설공사 미수금 회수 문제까지 거론한다.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추구할 만한 국익의 실체인가.

*** 이슬람국들과 관계악화 가능성

"전쟁은 좋은 사업 기회다. 당신 아들의 목숨을 투자하라"라는 노래가 있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 건은 순전히 경제적 손익계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리 큰 실익이 없어 보인다. 올해 이라크 재건사업 권리를 따간 회사들은 모두 미국 회사였다. 게다가 단기적으로 파병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장기적으로 보면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데 따른 결과로서 손해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둘째는 정치적 고려 사항이다. 파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한.미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파병해야만 북한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협조해 주리라는 것이 이 사람들의 논지인 것 같다. 근자에 미국의 대북정책 완화를 파병과 연관짓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파병하면 미국이 우리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해 외교적으로 협력할까.

미국은 그들의 세계전략 속에 판단해 행동할 따름이다. 그들은 가차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제국'의 논리를 따른다. 다름아닌 이라크가 대표적인 희생자라 할 수 있다. 원래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그런 명분과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한반도라고 다를 리 없다. 우리가 파병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미국은 그들의 '제국' 운영의 필요에 따라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고 안전보장을 문서화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가 파병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지 않다. 우리가 침략당하지 않았는데도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이 부도덕한 전쟁을 무모하게 벌이고 난 후 기력이 떨어지자 우리나라에 손을 내민 데 대해 우리가 거절하지 못해 끌려가는 느낌만 든다.

현재 우리 군대의 파병 지역으로 거론되는 곳은 북부 모술이다. 그 지역은 정치.인종.종교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치안유지 활동을 맡는다는 것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생각해 보자. 하늘색 유엔군 헬멧을 쓴 군대라 하더라도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모두 외국 점령군 혹은 적국의 앞잡이로 보일 뿐이다.

*** 전투와 다름없는 치안유지 활동

평화유지군은 걸핏하면 포로로 잡혀 처형당했고, 또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현지인 간의 학살을 방관하거나 묵인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망신당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각국의 국내 정치는 격랑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라고 이런 험한 꼴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파병과 관련, '국익'을 고려해 '국론'을 통일하자고 한다. 마치 이미 끝난 일이니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국익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 이익이며 그 이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등에 대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