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1년여 만에 미식축구 첫 게임 … 뉴올리언스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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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누가 세인츠를 이길쏘냐!"

25일 밤 미국 뉴올리언스 시내는 세 박자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도시의 상징인 대형 미식축구 경기장 '수퍼돔'이 1년1개월 만에 재개장하며 연 첫 게임에서 홈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가 애틀랜타 팰컨스를 23대 3으로 대파했기 때문이다. 홈구장을 잃고 떠돌이로 지내온 세인츠는 이날 신들린 패스와 사력을 다한 태클로 강적 팰컨스를 완벽하게 몰아붙였다. 그때마다 관중은 울음 섞인 환호로 지난 1년간의 고통을 날려보냈다. 수퍼돔은 뉴올리언스 재기의 상징, 그 자체였다.

"지난 1년간 가장 갑갑했던 건 우리 팀(세인츠)의 경기를 TV로만 봐야 했던 것이다. 이젠 카트리나의 악몽도, 보험금 수령도 모두 잊어버리자." 박봉을 털어 티켓을 샀다는 회사원 매튜(34)는 이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수퍼돔이 다시 문을 열었고, 세인츠도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제 우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지난해 8월 29일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면서 30년간 도시의 간판이었던 수퍼돔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수용소로 변했다. 이재민 10만 명이 일주일간 기거했다.

"한쪽 구석엔 시체가 방치되고, 변기를 흘러넘친 오물이 매트리스를 적시고, 또 다른 곳에서는 성추행이 벌어지고…부켄발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가 따로 없었지요. 그 아픔을 딛고 다시 섰습니다. 우린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로 붕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수퍼돔 재건 사업을 지휘한 도그 손튼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의 말대로 수퍼돔은 수마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내고 화려하게 단장돼 있었다. 그라운드에 새로 깔린 잔디와 천장에 설치된 8개의 대형 액정화면은 경기장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빨강.파랑.노랑의 6만8000개 좌석은 25일 첫 경기에서 빈 공간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재건에 들어간 돈은 무려 1억8500만 달러(약 1750억원). 아직도 공정은 70%만 이뤄진 상태다. 그러나 "도시의 상징을 복원해야 경제가 산다"는 당국의 의지로 조금 서둘러 이날 문을 열었다. 이날 개막 경기 티켓은 이미 두 달 전에 동이 났고, 그 밖의 올 시즌 7개 게임 티켓도 완전 매진됐다. 수퍼돔 31년 역사상 처음이다. "미시시피.플로리다.텍사스로 피난간 사람들도 현지에서 모두 티켓을 샀다. 그게 역경에 처한 고향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세인츠 구단주 브래넌은 말했다.

카트리나 이전에 비해 매출이 아직도 20%에 불과한 유흥가 프렌치쿼터도 재개장한 수퍼돔에 기대가 컸다. 선술집 '버바 검프'를 운영하는 스티브(31)는 "카트리나 이전에는 종업원을 150명이나 거느렸지만 지금은 40명으로도 유지가 어렵다"며 "뉴올리언스는 오로지 관광으로 먹고사는 도시다. 이제 수퍼돔이 문을 열었으니 장사가 살아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퍼돔에서 겨우 두세 블록 떨어진 거리에는 깨어진 유리창에 거미줄이 가득한 것이 아직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돔에서 3㎞ 떨어진 흑인 거주구역 '나인스워드(9th Ward)'도 홍수로 전파된 집들이 1년 넘게 그대로 방치돼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주민들은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전기와 가스가 끊긴 폐가에서 기거하며 푸드스탬프(당국이 제공하는 식권)로 연명하고 있다. 운 좋은 사람들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내준 '닭장(cage.트레일러)'에서 산다. 부부가 간신히 발을 뻗고 잘 침실 하나, 샤워 꼭지가 하나 달린 간이 화장실, 아동용 2층 침대가 전부인 두 평짜리 쪽방이다. 이런 트레일러에서 아내.아들.딸과 1년째 살고 있다는 브라이언(46)은 "연방정부가 카트리나 복구에 1100억 달러(100조원)를 쏟아부었다는데 내게 돌아온 건 이 닭장 하나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뉴올리언스=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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