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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몰래 지휘봉 살 만큼 초등생 때 정명훈에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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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외국 유학 한번 가보지 않은 '국내파'로 영국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김선욱(18.한국예술종합학교 3년)군. 심사위원들로부터'음악적 통찰력과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거장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연주를 들려주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머니 임미재(46.강서구 신정동 양동초등학교 교사.사진)씨를 만나 그 비결을 들어봤다.

1.자립심을 길러라

맞벌이 부부라 일일이 따라다닐 시간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레슨이며 음악회를 다닐 때 전철 타고 혼자 다녔다. 지도 교수를 누구로 할까도 다른 사람에게 소개받은 적이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학교 입학 정보도 직접 구해 왔다.

2.구체적인 꿈을 가져라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 정명훈씨에게 푹 빠져 엄마 신용카드로 인터넷 경매에서 지휘봉을 샀다. 음악을 틀어놓고 의자 위에 올라가서 눈을 감은 채 지휘봉을 흔든다.

3.음악을 골고루 들어라

교향곡.오페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듣는다. 훌륭한 연주만큼 좋은 스승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음악회 다니는 버릇을 길러 R석만 고집한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열 13번이 자기 자리라며 맨 먼저 예매한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음악 서적이나 악보.음반은 사달라는 대로 사줬다. 지도 교수에게 음악회 그만 다니고 연습하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4.뭐든지 미쳐야 한다

한 곳에 빠지면 끝까지 파고든다. 한때 지하철 티켓을 가격별.색깔별로 모았고 야구 선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연주자별로 음반을 다 구입한다.

5.성급한 유학은 금물이다.

초등학교 때는 유학 떠나는 날짜까지 못박아 놓고 졸라댔지만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게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6.억지로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가 어릴 때 악기를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어 가르치기 시작하긴 했지만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냥 커서 자녀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줄 아는 아빠가 되었으면 했다. 부모가 앞장서서 끌고 가기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택한 길을 뒤에서 따라가며 뒷바라지해 줬다.

7.체력을 길러라

어릴 때부터 축구.야구를 좋아했다. 왼손 투수 이상훈 선수를 좋아해 왼손으로 벽에 공을 던져 맞히곤 했다. 덕분에 왼팔이 강하다. 세종체임버홀에서는 2시간30분짜리 독주회도 해냈다.

8.돈보다 따뜻한 관심이 더 중요하다

놓친 음악회는 TV에서 녹화해 주고, 음악회 같이 가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연주자의 사인을 맨 먼저 받아 주고, 연습할 때 악보 넘겨준 게 전부였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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