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의 책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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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경제장관은 외국여행중 급거 귀국했다. 한가하고 유유자적해서 좋다. 세상이야 거꾸로 돌아가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는 뱃심일까.
아니면,뉴델리에서 열린다는 아시아개발은행(ADB)총회가 국내의 주식시장 공황이나 물가폭등이나 노사분규보다 중요했던 모양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귀국하지 말아야지 서둘러 되돌아 오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국민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파탄에 이른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앞서 국정을 맡은 고관대작들의 무신경,무책임,무정책이다. 취임무렵 그 화려한 기자회견과 취임사들은 다 어디다 덮어두고 오늘의 파국을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심야 경제장관 회의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심야회의가 별 수를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가 흔들리고,증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그동안 딴청만 부리다가 별안간 자다가 깬 사람 모양으로 한밤중에 회의를 하는 것이 우습다. 그나마 대책숙의 아닌 의견교환이었다니 말이다.
중국 후한말기의 경세가 순열은 정사가 제대로 되려면 사환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첫째 환이 「위」다. 대도를 버려두고 잔재주로 정치를 꾸려가는 경우. 요즘 민자당이 그 모양이다. 잔재주도 세련이나 됐으면 또 모르는데 미련하기 짝이 없는 재주를 부리다가 국민앞에 망신만 당하고 있다.
둘째 환은 「사」다. 공직자들이 공무에 얼마나 공명,공정한 지는 요즘 관청에 서류를 내본 사람은 다 안다. 창의력과 봉공과 사명감이라는 말 듣기가 민망하다.
세째 환은 「방」이다. 무책임이 바로 이 경우다. 세상이 이 지경으로 구겨있는데 긴장하는 장관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 긴장은 커녕 엊그제는 증시가 회복능력있다는 말로 주식값을 떨어뜨려 놓더니 이제와선 또 무슨 대책세운다고 부산하다. 어디서 신뢰와 원칙과 소신을 찾아본다는 말인가.
마지막 환은 「사」다. 사치하지 말자는 말은 골백번 들었지만 여기저기 바리 바리로 쌓인 외제품상점이 문 닫았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무역적자라면서 수입엔 브레이크도 없어 보인다.
통치력 회복만이 오늘의 난국을 푸는 실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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