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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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이는 우리 사회에 미흡한 복지 서비스를 개선하면서 고용도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내놓은 '사회서비스 확충전략'도 사회서비스 수요를 창출하고, 성장잠재력과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일석이조(一石二鳥)의 참신한 발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인식의 오류가 숨겨져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책 목표를 억지로 꿰어맞춰 실상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것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전혀 별개의 정책이다. 지향하는 목표도 다르고, 정책의 대상도 다르며,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다르다. 정부는 이 두 가지 다른 정책을 '사회서비스 일자리'라는 신조어를 매개로 뭉뚱그려 하나의 통합된 정책인 양 포장했다. 나름대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묘책인 것처럼.

이른바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복지 정책이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서비스를 정부 예산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의 추산에 따르면 방과 후 활동 분야에 19만8000명, 보육 분야에 14만 명, 간병 분야에 13만4000명, 문화.예술.환경 분야에는 6만1000명 등 이른바 사회서비스 분야에 모두 53만3000명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부족한 인력을 재정 지원을 통해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족한 것은 '인력(man-power, human resources, labor)'이지 '일자리(jobs)'가 아니다. 그런데 복지 확대 정책이 돌연 고용정책과 결합하면서 인력이 일자리로 둔갑했다. 노동의 공급(인력)이 느닷없이 노동의 수요(일자리)와 동의어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혼동은 일자리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된다. 사회서비스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당연히 그 누군가의 일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것은 한결같이 임금이 낮고, 고용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임시직이다. 이런 일은 사회적 필요성이나 종사자들의 사명감과는 관계없이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자리라고 보기 어렵다. 이 분야의 상당 부분은 현재 종교단체나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라 경제외적 동기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말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경제적으로 보면 과거 취로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걸 갖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노 대통령은 "후생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사회경제도 성장할 수 없는 게 국민경제의 구조"라고 했다. 용어 사용의 부정확성을 감안해 해석하면 복지의 확대를 통해 성장을 도모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지의 확대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는 없다. 성장의 어느 단계에 복지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과 복지를 통해 성장하겠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말이 잘 달리도록 마차를 개선하는 것이 마차를 말 앞에 매고 가자는 것과 다른 것처럼.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이란 바로 이 같은 인식의 혼란에서 나온 기묘한 결과물이다.

복지 확대는 필요하다. 다만 어느 시기에 어느 수준으로 늘릴 것이냐는 예산의 제약과 사회적 긴급성을 따져 결정할 일이다. 일자리 창출은 필요하다. 다만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확대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의해 생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각기 따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