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영광과 좌절 <6>|극소수 대지주가 농사60∼70%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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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라티푼디움(Latifundium·대지주제).
브라질·아르헨티나같은 나라들에는 작게는 몇백만평에서부터 크게는 몇십억평에 이르는 라티푼디오(Latifundio·대농원)들이 수두룩하다.
뿐만 아니라 도미니카·엘살바도르같은 작은 나라들에도 역시 대규모 농장들이 경작면적의 60∼70%를 점유하고있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에는 아직도 이른바 라티푼디움이라 불리는 전자본주의적 대토지소유제도가 엄존하고 있으며 토지의 대부분을 대지주들이 나누어갖고 있는 실정이다.
주로 목장·과수원·곡물재배 농장등으로 이용되는 이들 대농원은 어마어마한 토지들을 소유하고 노예를 시켜 경작하면서 호화롭게 먹고 놀던 중세기 영주들의 「장원」을 연상케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지주제는 16세기초 식민지시대 이래의 전통에 뿌리를 둔 중세 장원지주제적인 구라티푼디움과 2차대전 이후의 「개발」에 편승, 영농의 기업화를 내세운 다국적기업의 경제식민주의적 토지점유에 의한 신라티푼디움등 두가지 형태가 있다.

<많으면 수10억평>
어쨌든 이들 신구대지주들은 군부·산업자본가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대중적 빈곤」을 심화·확대시켜온 주요 요인의 하나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남미의 파리로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수도) 주위에 펼쳐진 팜파스(대초원)-.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땅끝이 하늘과 맞닿은 대평원이 몇백km씩 사방으로 펼쳐져 그 광활함이란 가위 상상을 뛰어넘는다.
파란 초원, 군데군데 불쑥 튀어나온 나무숲과 유유히 풀을 뜯는 소떼들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게 없다. 시속1백km속력으로 2시간 가량을 달리면 간간이 5∼6가구의 농가들이 차창을 스치고 「노란바다」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넓은 해바라기 농장이 일대장관을 이룬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들은 광활함과 비옥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토양의 비옥도를 측정하는 기준치인 부토의 깊이를 보더라도 내노라하는 호주나 캐나다의 토양보다 3배이상 깊은 부토를 갖고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아르헨티나인 스스로 그들의 땅을 「축복받은 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주요농작물이 연간 1백만t에 달하는 밀과 콩, 9백20만t의 옥수수, 3백20만t의 수수, 3백만t의 해바라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도 양이지만 종류도 다양하다. 또 팜파스에서 사육되는 육우만도 5천만마리에 이르고 이중 국내 소비및 해외수출을 위해 연간 1천2백만마리의 육우가 도살되고 있다.
밀·콩·옥수수·수수등 각종 곡물과 육류·식용유및 원피·가죽제품등이 아르헨티나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팜파스는 바로 아르헨티나 경제의 젖줄이며 근간이다.
그러나 꿀과 젖이 흐르는 축복의 당은 그 대부분을 극소수 인구가 차지하고 있다는데서 그들의 불행은 싹트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아르헨티나경제전문가들은 전체인구의 5%미만이 전국토의 80%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계했다.
브라질의 경우도 2천5백에이커(3백3만평) 이상의 대규모 농장이 전 농경지의 58%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전체인구의 1%가 경작가능농지의 5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웬만한 지주면 우리나라 경기도면적(1만8천평방km)정도의 땅덩어리를 소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백만ha(30억평)이상을 보유하고있는 지주들이 수십명에 이르고 있다.
취재팀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지주중의 한사람도 북쪽지역에 1백만ha의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35세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동차대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파블로씨는 『이 정도의 땅으로는 대지주라고 할수 없다』면서 자신을 중간정도의 지주라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의 농장은 밀과 콩을 주로 재배하고 나머지는 육우를 방목하는 목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의 대리인을 시켜 위탁경영을 하는데 총매출액의 25%가 순이익이라고.
소형경비행기로 2시간 이상을 돌아야할만큼 농장의 규모가 방대해 자신의 농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육우는 인력으로는 도저히 셀수가 없어 인공위성엣 촬영한 사진을 통해 개략적인 숫자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벌어들이는 연간수입에 대해서는 『달러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라 계산하기 어렵다』고 구체적 언급은 회피하면서도 『달러값이 급등하고 물가도 덩달아 뛰는데 생산량이나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이라며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대부분 위탁경영>
그러나 그가 거주하고 있는 주택은 수영장과 가정부전용옐리베이터를 갖춘 시가15만달러의 고급아파트이며 한달 생활비로 5천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별장용으로 남부 해안도시인 마르델플라타에 30평규모의 아파트 두채를 갖고있고 금년 1월에는 전가족이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한달가량 휴가를 즐기고 돌아왔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죽도록 일해봐야 한달에 고작 50∼60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5∼6명의 가족이 끼니떼우기에 급급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취재팀이 직접 들른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농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약 1백50km 떨어진 브란센시 근교에 위치한 네그레테 농장은 로사 아나 힐리여사(60)가 경영하는 1천5백ha(4백50만평)의 소규모 농장으로 밀·아마·보리·해바라기·옥수수등을 재배하고 젖소 2백마리와 육우 6백마리를 방목하고 있으며 젖소의 젖을 이용, 발화유를 생산하고 있다.
트랙터가 5대, 파종기 2대등 각종 장비를 이용한 기계화영농을 하고있는데 월25만아우스트랄(당시 환율로 65달러)의 노임을 받는 8명을 고용, 이들을 상주시키며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아나여사는 매월 1회씩 농장에 들러 감독만하고 실무는 지배인이 모두 처리하고있다.
다시말해 대규모농장이든 소규모농장이든 곡물을 재배하고 소를 기르는 일은 농민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궈놓은 수익은 대도시 호화아파트에 살면서 각종 향락생활을 즐기는 극소수의 지주들이 챙겨간다.

<지주생활 호화판>
따라서 이같은 상황에서의 농민이란 중세봉건시대의 농노와 다를바 없다는 얘기다. 중남미 각국의 농민들이 기아임금에 시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천혜의 기후와 토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농업이 발달하지 못한것도 라티푼디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 국가들이 아직까지도 농산물의 수출에 국가경제의 목을 매다시피하고 있으며 라티푼디움으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적 폐해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깨뜨리지 못하는데 있다.
아르헨티나는 농산품 수출액이 88년의 경우 57억6천만달러로 전체수출액(94억2천만달러) 의 61%를 차지하고 있고 브라질은 96억달러를 수출했다.
농산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그렇지만 16세기식민지 유산인 라티푼디움이 아직껏 폐지되지 못한데는 지주들이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특히 국가경제의 대부분이 이들에게 집중되고 있어 어떤 정권이든 지주계급과 결탁치 않고서는 정권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밀착>
중남미최초의 혁명으로 기록된 1910년 멕시코혁명도 바로 라티푼디움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고 칠레에서는 60년대말과 70년대초에 걸쳐 프레이정권과 아옌데정권이 각각 시도했으나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또 페루에서는 74년 페루형 「인간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벨라스코 군사정권이 토지개혁을 주창했으나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고 브라질은 굴라대통령이 이끄는 좌익정권이 64년 토지개혁 입법조치까지 완료했으나 지주계급정치세력의 엄청난 반발과 방해공작에 부딪혀 지금까지도 시행치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온갖 저지공작에도 불구하고 지주그룹과 토지분배를 요구하는 농민간에 끊임없는 충돌이 벌어져 사회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84년 브라질에서는 2천여건에 달하는 유혈충돌이 일어났고 이로인해 1백8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글 이은윤특집부장
문상현기자
사진 최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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