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없인 민주사회도 없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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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규칙과 질서를 절대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경기장마저 폭력과 난동으로 얼룩진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어제 중앙일보의 종합보도를 보면서 우리는 무규칙ㆍ무질서ㆍ폭력의 사회풍조가 여기에까지 이르렀음을 개탄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흥분한 관중들이 홈팀의 패배에 울분을 터뜨리고 오물세례를 퍼붓는가 하면 방화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판의 판정에 불복해 선수들이 퇴장해버리는 사태가 농구장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관중 앞에서 심판을 구타하는 추태가 축구장에서 일어났다.
비록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이든,현대스포츠의 총아인 프로야구이든 모든 게임의 본질은 정해진 룰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그 규칙이 만들어내는 놀이의 질서가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고 긴장과 흥분이라는 놀이문화의 조화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가 스포츠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바쁜 현대생활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게임을 통해 해소한다는 위락적 효과도 있지만 게임의 규칙이 이룩한 질서속에서,또 규칙 준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공정성의 틀안에서 경기자들이 벌이는 경쟁을 통해 민주적 삶의 본질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스포츠만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우리 모든 삶의 축도로서 규칙ㆍ규범ㆍ질서를 중시하는 삶의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올림픽을 개최했던 까닭도,사회체육의 중요성을 거듭해 고창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스포츠를 통한 민주화 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바로잡는 법정이 소동과 소란으로 마비되고 있고,한치앞을 먼저 달려 가려는 자동차 레이스를 방불케 하는 도시교통의 아수라장,법과 질서가 무시된 채 소속 집단의 이익과 욕구만이 배타적으로 분출하는 노사현장,심지어 떨어지는 주가를 탓하며 기물을 부수고 난장판을 만드는 증권가 객장의 추악한 모습속에서 우리는 넘쳐나는 무규범ㆍ무질서ㆍ무규칙의 우리모습을 비쳐보고 있지 않은가.
놀이문화 속에서 모범으로 지켜져야 하고 생활속에서 일상화 되어야 할 규칙과 질서의 준법정신이 무너지면서 무규범ㆍ폭력만능의 풍조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거리에서 뒷골목에서 날마다 밤마다 벌어지는 폭행과 폭력,정가ㆍ기업ㆍ관청에서 횡행하는 뒷거래와 야합,노사현장과 집단시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법과 위법의 행렬…. 이 모두가 스스로 지켜야 할 규범과 규칙을 포기하면서 남의 규범과 규칙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로 향해 가기를 바란다면 민주사회의 기본요소인 규칙과 질서를 자신의 몫으로 지켜야 하고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먼저 규칙과 질서를 준수하기를 스스로 요청하고 스스로 다짐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무질서를 강요하기 전에 자신들의 규칙과 질서를 먼저 지키자는 게 민주화의 과정이고 놀이문화의 본질인 것이다. 경기장의 놀이문화와 이 사회의 민주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경기자 개개인이,사회구성원 각자가 규칙과 질서를 준수하는 모범을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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