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 "삶이 마구 가렵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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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걸어가겠습니다."

배우 임창정을 떠올리면 코미디가 연상된다. 하지만 올해 서른 살의 이 배우는 좀더 욕심을 낸다. 코미디를 떠올리면 임창정이 연상되기를 바란다. 오는 24일 개봉되는 영화 <위대한 유산>(CJ엔터테인먼트, 오상훈 감독)은 그 꿈을 실현시키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가식이었던 마이크를 놓았다

임창정은 지난 8월 10집 앨범 <바이>를 끝으로 가수를 은퇴했다.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노래를 부르게 됐다. 노래하는 것을 즐기지 못했다. 간혹 급조한 노래들을 들고 나가서 마치 심혈을 기울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런 기억에서 벗어나 너무 즐겁다"고 고백했다.

5년간 함께 했던 매니저 한영택 씨의 신설 영화기획사 HMI브라더스에 참여해 '배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자신을 옭아맸다. 실제로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영택 씨가 영화 제작을 위해 '임창정'이란 상품을 외부에 팔 수 있도록 이름 사용을 허락했다.

기획사의 'I'는 임창정의 이름 이니셜이다.

■ 이제는 걸을 때다

지난 90년 영화 <남부군>으로 데뷔한 그는 "배우 인생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이라고 본다면 이제 경남 양산까지 왔다"고 했다. 놀랐다. 양산이라면 부산 가까이 온 셈 아닌가. 곧 "지금까지는 새마을호 기차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왔다. 이제부터는 기차에서 내려 걸어갈 것"이라고 한다.<비트><색즉시공><두사부일체> 등 14편의 영화에 크고 작은 역할에 출연했다. 매년 한 작품 정도는 했고,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위치도 됐다. 행복한 배우다. 하지만 "출연을 위한 선택을 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품마다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 스태프는 그를 기다린다

임창정의 영화 출연 결정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의 코드 ▲감독의 심성 ▲시나리오 문체의 센스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함께 할 사람들이 나와 코드가 맞는 '재미있는' 인물들이어야 하고 심성이 고와야 한다"면서 "<위대한 유산>의 오상훈 감독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임창정 또한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 구실을 톡톡히 했다. 스태프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다른 작품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 사람 좋아하는 그는 이 '형'이란 호칭 때문에 수차례 스태프 회식을 시켜줘야 했다.

■ <위대한 유산>은 놀이터였다

혹자는 임창정을 '프리즘'이라 부른다. 무색의 햇빛을 받아서 여러가지 색깔로 변환시키는 프리즘. 연기 주문과 시나리오가 원하는 색깔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색깔로 발산시키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 재주는 <위대한 유산>의 오 감독과 김선아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위대한 유산>은 영화 촬영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콘티북이 없었다. 오 감독은 "일상 속에서 나오는 웃음이 감동을 전해준다. 촬영장의 분위기와 출연진들의 본성이 녹아 들어가야 한다"며 임창정과 김선아의 '선(善)한' 심성을 담아내기 위해 주연 배우들을 풀어줬다.

그 덕택에 "똥 쌌어" "치사하다" "미안하다구" 등 영화 속에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기발한 대사들은 임창정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현장에서 태어났다.

일간스포츠 박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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