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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손님 '겨울 철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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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동북아 최대 철새 도래지인 충남 서산 천수만은 요즘 겨울나기를 위해 찾아든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여름철 잦은 비로 벼가 아직 여물지 않아 수확을 늦추고 있는 간척지 농민들은 겨울 철새가 늘어날수록 걱정도 커지고 있다.

이곳을 찾은 철새들은 예년과 비슷한 규모인데 추수를 끝낸 논은 예년에 비해 크게 부족해 떨어진 이삭이 적다 보니 철새들이 추수 안한 벼 이삭까지 쪼아먹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서산영농법인 관계자는 "9백여만평의 간척지 논 중 추수가 끝난 곳은 20%도 채 안된 상태에서 기러기 등 철새들이 쓰러진 벼의 이삭을 쪼아 먹고 있다"며 "철새들이 하루 평균 먹어 치우는 양이 60가마(가마당 80㎏)에 육박해 매일 1천만원 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영농법인 직원들은 철새들이 집중적으로 먹을거리를 찾는 해질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철새를 쫓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논 가장자리 곳곳에 볏짚을 태우고 폭음탄도 쏴 보지만 철새들이 내성이 생긴 데다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간척지 한 가운데 벼를 주로 먹어 치워 속수무책이라는 게 직원들 설명이다.

현재 간월호 일대에선 이 지역 대표적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1만여마리씩 떼지어 먹이를 찾아 헤메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농민 朴모(53.서산시 부석면)씨는 "올해 간척지 6천여평에 벼 농사를 지었으나 5% 가량이 철새들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 같은 피해 때문에 농민들은 오는 24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부석면 간월도 및 간척지 일원에서 열리는 '제2회 천수만 철새 기행전'을 반기지 않는 표정이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과 조류 전문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께부터 천수만에 찾아든 가창오리.큰기러기 등의 겨울철새는 21일 현재 20여만마리로 불어났다. 특히 멸종 위기 종인 가창오리는 해마다 전세계 개체수의 90% 이상이 이곳을 찾아 21일 현재 개체 수가 10만마리에 이르렀고, 지금도 계속 날아오고 있어 최대 30만마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류 연구가 김현태(36.서산여고) 교사는 "다음달 중순께면 50여만마리의 철새가 이곳에 찾아와 본격적인 월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농민들은 벼 피해를 줄이려면 가급적 추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철새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규정은 없다"며 "농민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올해 이곳에 처음 도입된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에 따른 먹이용 벼 제공 논 확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산=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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