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호흡 짧아진 경기 사이클 … 점점 예측 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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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순환 주기가 불분명해지면서 금리, 통화, 재정 정책 등 각종 경제 정책의 '약발'이 제대로 안 먹히는 상황이다. 또 경기의 호흡(경기 순환 주기)도 유례없이 짧아지면서 경기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사이클이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아지는 바람에 각종 거시.미시 대책들이 통하지 않고, 정부의 임기응변식 대응책만 남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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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이 사라졌다=한국은행은 7월 "연말은 물론 내년에도 우리 경제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관측은 빗나갔다. 하반기 들어 경기는 가파르게 둔화되고 있다. 경기 선행지수는 6개월 연속 하락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선임 연구원은 "지난해 1월 경기가 저점에서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불과 1년 반 만에 다시 침체기에 들어선 모습"이라며 "상승과 하락을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흐름이 활력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사이클은 특히 2000년 들어서면서 호흡이 확 짧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2년부터 공식 집계된 우리나라 경기의 순환 주기는 평균 4년(50개월). 특히 경기가 저점을 찍고 상승세를 구가한 확장기(31개월)가 다시 움츠러드는 수축기(18개월)보다 훨씬 길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이런 패턴은 크게 바뀌었다. 한은 산하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우리 경제는 두 차례의 경기 정점(2002년 4분기와 2003년 4분기)과 세 차례의 저점(2001년 4분기, 2003년 2분기, 2005년 1분기)을 지나왔다. 이 기간 경기 순환주기는 27개월로 짧아졌다.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금융경제연구원 남상우 사회경제연구실장은 "경기 사이클이 빨라진 것은 물론 수축기(평균 16개월)가 확장기(12개월)보다 길어지는 양상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 예측도, 정책도 어렵다=경기 사이클이 짧아진 데다 호.불황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경기가 뜨뜻미지근해지면서 정책 당국도 당혹해하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통상 6개월, 1년 뒤를 내다보고 통화 금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지금처럼 한치를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선 정책의 방향과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몇 달 새의 경제상황을 기준으로 대책을 내놔도 시행 시점에서 이미 경제 여건이 바뀌는 바람에 당초 의도했던 효과를 제대로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경제 상황이 워낙 급변하다 보니 정부에서 내놓은 각종 대책이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원인과 해법은=2002년 '카드 대란'을 촉발시킨 정부의 엇나간 경기 부양책과 사이클이 짧은 정보기술(IT)에 치우친 산업 구조를 이유로 꼽는 시각도 있다. 삼성증권 오현석 스트래티지스트는 "우리와 비슷하게 IT 비중이 높은 대만도 2002년 이후 거의 1년 주기로 경기가 정점과 저점을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론 쇠약해진 경제 활력과 뒷걸음치는 성장 잠재력 탓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조적으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나타나는 후유증이라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항용 박사는 "10여 년째 제자리 걸음인 설비 투자를 늘리는 게 급선무"라며 "고용 여력 등에서 한계에 달한 제조업 부문 대신 교육.의료 등 서비스 산업을 적극 키워 고용과 시장을 키우는 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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