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법인 대표 성해용씨 고졸 은행원→고시원 주인→세무사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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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법인 '정상'의 성해용(43.사진)씨는 프랜차이즈 기업에 대한 회계 및 세무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세무사다. 그는 매일 서울 대림동의 단독주택에서 EF쏘나타를 타고 서울 강남의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고객 미팅과 상담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또래의 월급쟁이보다 많은 수입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의 재산 목록 1호는 가족. 자정을 넘겨 귀가해도 반갑게 맞아주는 부인(39)과 지난달 태어난 첫 딸을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성씨를 처음 보는 사람은 대개 그를 부러워한다. 단란한 가족과 자기 집에서 사는 데다 퇴직 걱정 없는 전문직에 종사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가 오늘의 모습을 일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성씨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1남2녀의 둘째로 자랐다. 고등학교도 가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선생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서울 영락상고에 진학했다.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중은행에 입사했다. 고졸 학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자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다닐수록 아쉬움이 커져 갔다. 고졸 행원은 지점장이 될 수 없었다. 은행에 안주하면 차장으로 은퇴해야 했다. 그는 입행 7년만인 1989년 사표를 던지고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학비는 그동안 모은 돈과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충당했다.

94년 초 졸업장을 받은 성씨는 서울 충정로에 고시원을 열었다. 취업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계대책으로 시작했지만 고시원 운영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사업을 키우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하지만 건물주인이 성화를 부렸다.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해왔다. '평생 할 일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그는 고시원을 접고 평소 관심이 있던 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수학을 좋아했던 데다 은행에 다니면서 쌓은 지식도 상당했다. 영업에도 자신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세무사 선배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100여 곳을 고객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3년간의 공부 끝에 그는 2002년 시험에 합격했다. 동료들과 힘을 모아 기업 세무를 전문으로 하는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전문 세무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가게 하나에서 출발한 곳이 많아 세무에 미숙하고 가맹점과 관련된 회계처리도 서툴러 세무사로서는 새롭게 개척해보고 싶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 틈틈이 짬을 내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회계.세무 지침서도 쓰고 있다. 성씨는 "은행 입행 동기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열 명 중 한두 명밖에 안 된다"며 "남들에 비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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