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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보혁개념에 현격한 시각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같은 정치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서도 현격한 견해차이로 상호간에 의사교환과 토론이 단절돼왔던 보수·진보정치이념의 대표적 이론가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정당정치와 보혁구도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12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이념교육교수협의회」(회장 한점수)주최로 열린 「90 한국이념논단」세미나에서 대표적 보수정치이론가인 양동안교수(정신문화연구원)와 재·야운동권에서도 가장 대표적 진보정치이론가로 꼽히는 김근태씨(전민련집행위원장)가 「한국정당정치와 보혁구도」라는 동일주제의 발표와 토론을 가졌다.
이밖의 토론자로 보수적 입장에서 한용원교수(한국교원대)·유종렬씨(전경희대교수), 진보적 입장에서 채만수씨(민족민주운동연구소장)·이신범씨(전통일민주당 정책실장)등이 참가해 논쟁을 벌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서로간의 너무나 현격한 견해차와 서로 다른 개념규정등으로 활발하고 생산적인 토론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현시점에서 가장 대조적인 정치적신념과 정세분석의 격차를 느낄수 있게 해주어 관심을 모았다.
토론의 요지와 토론장분위기를 요약해 소개한다.
먼저 양동안교수는 혁신 정당의 필요성과 장애요인을 중심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양교수는 『보수주의란 현상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서 출발,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하고, 『이런 기준에서 볼때 외면적으로 변화를 표방하고 있는 민자당은 보수정당이 아니라 개혁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남한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정당을 합법화한다는 것이 있을수 없으므로 혁신정당이란 곧 민주사회주의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예:영국의 노동당)을 말한다』고 규념개정했다.
이러한 개념규정에 따를때 혁신정당은 소외된 저소득층의 이익을 대표함으로써 경제·사회적 모순을 평화적이고 정의롭게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다.
양교수는 이러한 혁신정당의 출현을 방해하는 것이 ▲민주사회주의를 개량주의로 매도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세력 ▲실천하지도 못할 민주사회주의노선을 의치는 자유민주주의 정당 ▲민주사회주의를 빨갱이로 간주하는 냉전사고 ▲민주사회주의 세력들의 불분명하고 소극적인 태도등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이 양교수가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혁신정당의 출현이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는 재야세력등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는 논지의 주제발표를 한데 이어 김근태씨는 현정권을 비판하는 주제발표를 했다.
김씨는 『현재의 정당법·선거법틀 안에서는 정치적 투기꾼과 특권층만이 정당활동을 할수있다』고 전제하고 『기존의 여당은 권력자의 단순한 외피이며 행정권력의 들러리』『제도권 야당 역시 지배세력의 정치공작에 무력화된 이데올로기적 장식기구』라고 맹비난했다.
김씨는 또 『민자당합당은 실질적인 정치쿠데타로 반민주연합』이라고 규정하고, 민자당이 얘기하는 보혁구도란 『국민대중의 냉전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민족민주세력을 대중으로부터 분리하고 고립화해 탄압하고자 하는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제발표가 끝난뒤 토론참석자들의 논평이 이어졌는데 예상대로 채만수·이신범씨는 양교수의 발표를, 한용원·유종렬씨는 김씨의 발표를 비판했다.
먼저 한교수는 『자유민주주의란 사회의 모든 세력이 제도권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재야의 혁신세력도 장내로 들어와야한다』며 보혁구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채씨와 이씨는 양교수의 발표를 겨냥, ▲혁신세력의 정치참여에 앞서 공정한 기회보장필요(국가보안법·집시법등 개폐) ▲현실적인 정치발전의 장애는 혁신세력이 아니라 정부·여당(안기부등 공작정치·우익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현격한 견해차를 느낀 김·양두발표자는 답변형식을 통해 서로간의 논의가 발전적이지 못하고 공허함을 지적하고 세미나를 끝냈다. 먼저 김씨는 『가치·신념의 문제뿐아니라 객관적 사실에대한 접근방법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집회와 시위라는 자유권적 기본권도 보장되지않는 현상황에서 자유를 얻기위해 투쟁하는 길외에 또다른 대안이 있겠느냐』고 자문했다.
반면 양교수는 『김씨가 논쟁상대로 나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공허한 말싸움자리가 될것」이라고 예상했었다』며 세미나참석소감을 밝힌 뒤, 재야운동권에서 나온 여러가지 유인물과 책자를 직접 인용하면서 『이들은 분명히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와 양교수는 서로가 논쟁상대로 참석한다는 사실을 모른채 주제발표를 맡겠다고 약속했었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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