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인의 사정(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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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중소기업인의 한숨 소리는 혼자 듣기엔 너무 딱했다. 그는 수출상품을 만드는 조그만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그 회사 제품은 수출이 잘 되어 공장을 늘리기로 했다.
서울 장안은 처음부터 엄두도 못내고,서울 북방으로 50리쯤 떨어진 곳에서 땅을 보러 다녔다.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아니,괜찮은 자리들은 있는데 값은 둘째 치고 아예 내놓질 않았다. 후미진 곳을 뒤져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을 안내하던 복덕방 사람은 안됐다는 얼굴로 말했다. 땅 주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땅문서를 깊숙히 감추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밤만 자고나도 값이 달라지는데 서둘러 땅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어쩌다 나온 자투리 땅도 여기가 어딘가 싶게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그 기업인은 그래도 낙담하지 않았다. 좀 멀찌감치 밖으로 나가면 다르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더 북쪽으로 가 보았다.
마침 계사가 하나 나와 있었다. 양지도 바르고,자갈 덮인 길은 트럭이 드나들기에 충분했다. 방풍막이만 잘 하면 당장 공장으로 사용해도 무방했다.
그는 서둘러 전화국부터 찾아갔다. 서울과 떨어져 있으니 전화는 두대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전화국은 동문서답했다. 계사에 무슨 전화가 필요하며,더구나 그렇게 동 떨어진 곳에 전화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화는 그렇다 치고,전기는 공장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전기회사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닭치는 집에 고압전기를 끌어다 무엇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 중소기업인은 또하나 중요한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런 외딴곳에 크지도 않은 공장을 벌여놓으면 누가 와서 기계를 움직여 준다는 말인가. 결국 서울에서 기능공들을 출퇴근 시켜야 하는데 회사버스까지 살 형편을 못된다.
또 그런 여건에서 수출제품을 만들어 보아야 원가부담을 이겨낼 재주가 없다.
땅은 이제 집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넘어 우리 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투기꾼들의 발자국이나 뒤쫓아 다니는 숨바꼭질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근본에서 문제를 푸는 대책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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