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마시는 심정'이라던 김근태 의장 취임 10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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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주한 대사들이 1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 김 의장, 글레브 이바셴초프 주한 러시아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강정현 기자

"100일을 맞았다는 것은 장기집권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8일 주한 외국 대사들을 웃겼다. 그는 이날 미.일.중.러 4개국 대사와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김 의장의 발언은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당의장이 된 지 100일을 맞으며 꺼낸 자축 인사이기도 했다. 그는 모처럼 여유있고 밝은 표정이었으며 자신감도 묻어났다.

이에 앞서 김 의장은 "100일 전에는 우리 당이 혹시 타이타닉호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매우 컸다"며 "이제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넘겼고, 거친 바다를 넘어 새로운 목적지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지난 100일을 평가했다.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그는 "지나온 100일처럼 앞으로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마음을 모으면 반드시 정권 재창출을 이룰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항로는 분명하다"며 "오직 경제"라고 했다. 당내외 반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뉴딜'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김 의장은 오후에는 전주에서 열린 전북 지역 당원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한나라당과의 공조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한나라당과의 연합은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오는 데 땀과 눈물을 함께한 형제인데, 여러분을 경멸했던 한나라당과 손잡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국민은 우리의 국방력을 믿고 있으며, 전시작전통제권을 이행하는 것은 한.미 동맹 우호 관계를 현대화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 "시간 지날수록 성과 날 것"=이날 김 의장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5.31 지방선거 참패 뒤 정계개편과 공중분해론에 휘말렸던 당을 구해냈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내년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을 오픈 프라이머리로 가닥 잡은 것은 김 의장이 끌어 낸 성과다. '대기업 등과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 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제 설정도 그가 주도했다. 김 의장 측 관계자는 "뉴딜에 대해 당내에서 말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성과를 낼 것"이라며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 등 작정한 프로그램을 하나씩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 차가운 시선들=김 의장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뉴딜에 호의적이지 않다. 재벌 총수의 8.15 사면을 약속했지만 정작 노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사퇴 파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비토론'이 일었을 때 김 의장은 당.청 간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 안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선 당론을 정하지도 못했다. 10월 25일에 있을 재.보궐 선거 결과는 김 의장의 리더십에 분수령이 될 것 같다.

◆ 김 의장, 4강 대사와 오찬=김 의장과 4강 대사는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복귀를 통한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는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한다는 확실한 의사를 표현한다면 6자회담 이전이라도 북.미 양자회담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의 제재 모자를 쓰고는 회담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언을 거론하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김 의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잘못됐지만 이 문제가 과장돼서 해석될 필요는 없다. 한국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nova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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